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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18)
깊이에의 강요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 1,34) 세례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예수를 알지 못했지만(33절), 이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알아보고 증언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받아들이는 예수의 자세를 보고. 오늘은 '과연 나는 보았다'라는 문장을 곱씹었다. 요한은 무엇을 보았기에 알아보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나도 복음 속에서 요한이 본 '그것'을 보고, 알아듣고 싶었다. 그러다 말없이 물 속에서 머리를 숙였을 예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자꾸만 올라와 답답해하고, 숙이고 싶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개를 젓던 나를 위해서였을까. 그래,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성령이 내려와 머무르시는 ..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요한 5,35) 등불은 '타오르며' 빛을 낸다. 빛을 내려면 타올라야 하고, 타오르려면 불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등불이 되는 일은 결국 남김 없이 나를 내어 놓아야 하는 일이다. 뜨거운 불을 견디고 타들어가고 녹아 내려,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까지를 다 겪는 일이다. 혼자서 빛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일이기에. 오늘은 요한의 삶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겠다. 빛나려는 마음보다 빛을 내는 마음으로, 빛나려는 마음보다 타오르려는 마음으로.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 2,16)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면 돈을 낸 만큼 기도의 응답을 요구하게 되고, 들인 공덕보다 더 많이 얻어 가길 바라게 되고, 기도를 내가 원하는 은총을 사기 위한 지불 방식 정도로 여기게 된다. 그러니 치워야 한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신앙 장사치로 살아가지 말 것!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1,48) 나타나엘은 ‘지금’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를 보셨다. 필립보가 자신을 불렀고, 자신이 그분을 만나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이 먼저 그를 보셨고 필립보를 통해 불러들이셨다(47절). 언젠가부터 좋아진 복음의 한 장면이다. 갈곳 잃은 심정으로 아무도 없는 곳을 찾던 나, 하느님께만 내 마음을 겨우 내보일 수 있었던 나, 하느님을 부르기조차 힘들었던 나…를 보셨구나 싶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몰랐던 그때도, 내가 당신을 부르지 못하던 그때도 이미 나를 보셨고, 부르고 계셨다. 알아보지도 못하..
복음의 장면을 하나하나 마음 속으로 그려보며 묵상을 하다보니 뒤로 갈수록 마치 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서서히 빛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인데, 두 제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후(10절)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흔적만 남은 빈 무덤이었던 곳이 천사와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늘 나라로.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요한 20,14) 천사와 예수님 사이에 있는 막달레나. 이 놀라운 공간에서 누군들 예수님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1절)부터 예수를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 이 애타게 찾는 마음 앞에서 그 텅빈 공간은 변화했다. 흔적만 남은 공간에서 ..
‘석 달 열흘’이라는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던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매일을 눈물로 지내던 며느리는 서러움을 참다못해 몰래 약방을 찾아갔습니다. 나쁜 줄은 알았지만, 시어머니의 기력을 서서히 쇠하게 하는 약을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지혜로운 약방 어르신은 뜻밖의 처방을 내렸는데요, 온갖 정성으로 하루 세끼 꼬박꼬박 음식을 지어, 딱 석 달 열흘 동안만 시어머니를 봉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잘해드리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방되고 싶었던 며느리는 당장 그날부터 지극정성으로 밥을 지어 올렸습니다. 괴팍했던 시어머니는 지극정성에 감동하여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고 반대로 며느리는 자신을 사랑해주기 시작한 어머니께 자꾸만 죄송스러워졌습니다. 미움으로 눈이..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46) #dailyreading 머무르지 않게 하신다는 말은 내 머무는 곳을 어둠에서 빛으로 짠하고 바꾸시는 게 아니라 어둠에서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도록 나를 다독이고 이끄신다는 말.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평화를 갈구하는지.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만이 아니라 내 삶의 작은 분란마저도 없어지기를, 그렇게 내 삶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래서 평화를 주신다는 이 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읽을 때마다 나를 간절하게 만든다. 그런데! 남기고 간다, 준다 하시면서 반복해서 말씀하셨지만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명령으로 이어진다.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평화를 남기셨으니, 평화를 준다고 하셨으니 가만히 앉아 있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