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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18장 (7)
깊이에의 강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루카 18,41)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제는 시력보다 시선을 되찾고 싶다. 내 시력만 믿고 이것저것 다 쳐다보고 제대로 본 것이리라 확신하며 살기보다, 선한 시선을 보내고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고 상대를 위해 때론 시선을 거둘 줄도 아는. 오랜 만에 카드 만드느라 색연필을 깎다가 깎여나간 부스러기들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싶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루카 18,11-12) 설마 이 말씀이 단식과 십일조를 폄하하시기 위함이겠나. 강도나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를 편드시는 것이겠나. 다만 열심히 단식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한 결과가 남을 판단, 비난하는 거라면 오히려 안하니만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겠나. 뭘 했고 안 했고 보다, 하느님 앞에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자신을 낮추는 ‘솔직?하고 투명한 내적 상태!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내 영혼에 더 이로운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나. 우리가 단식하고..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 18,41) 혼탁한 세상 속에도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선의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후회로 가득 찬 내 안에서 아직 남아 있는 첫 마음과 열의를 아직은 돌아설 수 있을 때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비록 내 삶이, 그의 삶이 까맣게 타고 남은 잿더미 같을지라도 희미하지만 반드시 남아 있을 당신 사랑의 불씨를 찾아내게 하소서. 비록 돌아섰었더라도 다시 한 번 돌아서서 내 안의 당신을, 그 안의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루카 18,11) ‘혼잣말’로... 하느님을 불렀어도 하느님을 향하지는 않는 기도가 있다. 하느님이 들으시길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남들이 듣기를 바라거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걸로 족한 기도. 듣는이를 고려하지 않는 말이 대화일 수 없을진대, 하느님을 향하지 않는 말이 과연 기도일까. 어디 기도 뿐이랴. 어떻게든 매일 복음을 읽고 뭔가라도 끄집어 내어 기도를 올려보지만, 내 묵상의 끝에는 과연 누가 있을지. “주님께 올리는 기도, 분향 같게 하옵시고, 쳐든 손 저녁 제사 같게 하옵소서.”(시편 140,2 최민순 역)하고 노래한 시편 저자의 바람을 알 듯 하다. 힘차게 내뻗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하늘로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처럼 금새 사..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어야겠다. (루카 18,5) 우리의 항구한 기도는 '올바른 판결'을 가져온다. 기도의 끝은 내뜻 관철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
▥ 연중 제30주일 루카 18,9-14 아침 영어 미사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미사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복음과 독서가 무엇이었는지 도대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처음엔 영어라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눈으로 천천히 보고 읽어도 얼른 다 알아듣지 못하는데, 원어민 발음에다 원어민 속도로 들려오는 그야말로 native speaking은 정말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나가버립니다. 복음이나 강론이 기억나지 않아도 맘 편하게 영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미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성당에 홀로 앉아 있다가 깨달았지요, 영어로도 읽고 한국말로도 읽는 복음이나 본기도 역시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영어라..
이번 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로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라 해도 밤낮으로 줄곧 조르는 과부가 귀찮아서라도 ‘올바른 판관’을 내려준다고 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덧붙이시는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입니다. 신자들을 만나보면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저도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럴까요? 과연 기도가 결과를 가지고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수능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떨어졌다면 그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걸까요? 반대로 제대로 공부는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