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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2장 (4)
깊이에의 강요
우리가 바쳐야할 시간경 중에서 나는 끝기도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수도회의 찬미가 멜로디도, 시편들도(특히 91편),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라고 노래하는 응송도,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시므온의 노래도, 성모찬송도 모두 좋다. 이번 주 복음에는 “이제는 놓아 주소서” "이제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떠납니다" 등으로 번역되는 Nunc dimittis(시므온의 노래)가 나온다. 이제 보았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시므온의 고백. 그는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다.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길 희망한 것도 맞지만 시므온은 '보여주시는 때'를 기다렸던 사람이다. 보여주실 때까지 떠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것. 그래서인지 우리 수도 서원의 ..
내 계획만 생각해서 길을 나서고, 내 짐작만 믿어서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고, 내 애쓴 수고만 생각해서 찾은 안도감보다 속상함이 먼저고… 예수가 내 옆에 없다고,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고 원망했던 순간을 되돌아 보면 내멋대로 계획하고 내 짐작만 믿고 내 노력만 가상해서, 내가 예수를 두고 떠났다는 건 까맣게 잊었음을 알게 되더라. 살면서 잊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들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45절) ‘성전’(46절)에서 찾아낼 수 있길 다짐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한다.
기다리는 이 (루카 2,25) 오늘은 기다림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부풀었던 희망도 잦아들기 마련이고 뜨거웠던 열정도 식어가기 마련이다. 매순간이 처음처럼 한결 같지는 못한다 해도 한 번 품은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자체가 구원이 아닐까. 시메온도 한나도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기다렸기에 구원을 볼 수 있었다.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의롭고 독실하게,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내가 원하는 때에 보기를 희망하지 않고 그분이 오셨을 때 알아보기를 희망한 사람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렸고, ‘마침내’ 보았던 사람들.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다. 나 역시 그분이 보여주시는 ‘그때’까지 내 서툴고 빈틈 많은 삶을 붙들고..
가해 주님 봉헌 축일 루카 2,22-40 주님 봉헌 축일은 예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했음을, 우리 역시 그분께 봉헌되어야 함을, 이미 봉헌되었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아직 완성되기 전의 모습인 아기를 바치는 것은 시작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시작을 바친다는 것은 첫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작고 약하고 소박하지만 순결한 ‘처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처음을 바친다는 말은, 이후 펼쳐질 모든 상황도 바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처음 먹었던 마음이 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압니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을 만나고 어려움을 겪고 예상치 못한 난관이 우리를 주저앉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