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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2,22-40 기다리는 이 #dailyreading 본문
기다리는 이 (루카 2,25)
오늘은 기다림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부풀었던 희망도 잦아들기 마련이고 뜨거웠던 열정도 식어가기 마련이다. 매순간이 처음처럼 한결 같지는 못한다 해도 한 번 품은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자체가 구원이 아닐까.
시메온도 한나도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기다렸기에 구원을 볼 수 있었다.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의롭고 독실하게,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내가 원하는 때에 보기를 희망하지 않고 그분이 오셨을 때 알아보기를 희망한 사람들.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렸고, ‘마침내’ 보았던 사람들.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다. 나 역시 그분이 보여주시는 ‘그때’까지 내 서툴고 빈틈 많은 삶을 붙들고 기다림을 이어간다. 내 삶은 내가 기다릴 수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반드시 보여주실 것이기에 기다리는 삶이다.
어제는 문득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상처 입은 자존심이 나를 이끄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나를 이끄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분께 내가 나 자신을 봉헌한 이유이고, 그분이 나를 축성한 이유이다.
머무는 곳과 일하는 곳을 오가며 어수선하게 사는 요즘이라 봉헌 축일조차 어수선하게 보내지 않도록 올해는 예기치 못한 응원을 받았다. 주일에 급하게 미사를 대신 하러 온 신부님이 예정되어 있던 예식과 행사를 미처 숙지하지 못한 채 정신 없이 미사를 봉헌하셨고, 이런 사실조차 미리 알지 못해 불편함을 느꼈지만 나라도 인사와 사과를 해야겠다 싶어 제의실에 들어갔는데 내 말에 이어지는 그 신부님의 첫 말이 “수녀님, 봉헌 축일을 미리 축하드립니다.”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제로부터 처음 들은 말이 내 수도삶에 대한 축복의 인사였다. 불편함을 뒤로 하고 해야할 일을 하려고 마음 먹고 발을 뗀 ‘그때’, 나는 구원을 본 것이다. 이 묵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문자를 하나 받았다. 축하와 기도를 약속하는 어느 사제의 문자. 수년 전 스쳐 지난 인연임에도 올해 문득 그의 기도 끝에라도 기억되었다는 사실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그분을 기다리며 내 삶을 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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