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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vita contemplativa (339)
깊이에의 강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소리도 없이 소복하게 피어난 작은 꽃들을 보며 질곡의 세월마저 고요하게 품어 안으셨던 성모님을 생각했다. 스스로 소리치지 않으니 오히려 보는 이가 탄성을 자아내는 삶.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다니던 동네에 수녀가 되어 다시 살았고, 다른 소임을 살다가 10년 만에 돌아와 다시 여기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잘 단장된 공간이라 더 예쁘기도 하지만, 그때 그 꽃이 올해도 이렇게 예쁘게 피었구나 싶어 새삼 감동하게 된다. 해마다 묵묵하게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잎을 떨구는 삶의 무게. 고목(古木)도 거목(巨木)도 아니고, 일 년에 며칠을 꽃피우것 말고는 눈에 띌 일도 없지만, 변함 없이 그 자리에서 피..
만날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신부님들이 있는데 그들 중 하나인 오늘 만난 신부님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스러웠다. 학사님이었을 때 만난 날 첫인상부터 '이 사람은 진심이구나.' 싶었는데 신학생 시절도, 사제가 되고 난 후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심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 사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려면 '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무얼 좀 더 배워야 할까 선배 사제에게 물었는데 그 선배 사제의 대답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뭘 더 배우는 것보다 사제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 지금이야말로 성경 통독을 제대로 해보고, 학위를 따는 공부가 아니라 히브리어를 공부하면서 원어 성경을 읽어본다던가, 환경 문제에 귀를 기울여 등을 깊이 있게 읽고 ..
처음 이 기도서를 만드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관여를 해야하는지 몰랐다. 자문이나 교정 정도이리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을 고르듯 내 의식 속에 깊이 박힌 돌을 빼내고 흙을 갈아 엎고 다져서 땅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고나 할까. 꽁꽁 문을 닫아 건 교회 안의 목소리도, 바깥에서 그저 교회를 향해 문을 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아니어야 했고 시대의 변화에 눈을 맞추면서도 하느님 없이 사람만을 말하지도 않아야 했기에 나의, 우리의 작고 미숙함을 매순간 인정하고 실망해야하는 아픈 시간도 보냈다. 그리고 그만큼 내 마음과 귀를, 생각과 언어를 다듬어 주시라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했다. 가족에 대한 세속적 정의도 공부하고 가톨릭에서 말하는 가족 공동체에 대해서도 새로..
○ (조부모)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시고 축복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제게 자녀를 선물로 주셨고, 하늘의 별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손주도 주셨으니 더욱 굳게 당신을 의지하며 이 아이를 당신께 맡겨 드립니다. 저는 비록 육신의 힘은 약해졌으나 신앙과 지혜는 깊게 하시고 마음은 넓게 하여 주시니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기꺼이 제 삶을 이 아이와 함께 하겠습니다. ● (손주) 저를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 저는 매일 매순간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저를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당신의 사랑을 느낍니다.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저를 돌보아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고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바르고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 아기 예수님..
○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의 긴 삶의 여정 동안 함께 하여 주시고 존엄을 잃지 않도록 힘이 되어 주시며 부족함 없는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하늘나라를 향한 여정을 걸어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 저희는 이제 기력이 약해졌고 때때로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당신께 더욱 의지하게 하시고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는 믿음으로 채워주시며 저희 입에 늘 당신을 향한 찬미를 담아 주소서. ◎ 오래된 길의 상속자로서 당신께서 저희의 온 생애를 통해 가르쳐주신 인간의 존엄과 지고한 삶의 가치를 후세에 증언하며 물려주게 하시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처럼(요한 13,1)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 가족과 친구, 이웃을 사랑하..
○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시며,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욥기 42,2)을 고백합니다. ● 이미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가장 알맞은 협력자를 주셨고 당신께서 주신 모든 것이 저희에게는 은총의 선물이었기에 주시지 않은 것들을 통해서도 이루실 당신의 계획마저 감사드립니다. ◎ 저희는 비록 자녀를 갖지는 못했지만 저희 두 사람이 이루어가는 성가정을 축복해 주시어 세상을 위한 자비와 친교의 표징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이 기도는 특별히 자녀를 바라고 기도했던 부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자녀가 없는 가족도 충분히 성가정을 이룰 수 있기에 해당되지 않는 분들은 성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치시기 바랍니다.
○ (부모 보호자) 저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희를 사랑하신 하느님 아버지, 저에게 아이의 이름을 _____으로 짓게 하시고 당신께서도 _____이라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아이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제게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이고 제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는 _____을 사랑합니다. ● (자녀) 제가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만한 당신의 자녀이듯 제 어머니(아버지)도 저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있음을 저는 압니다. 제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어머니(아버지)의 자녀이듯 제게도 어머니(아버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를 따뜻하게 지켜보시듯 저희가 서로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하소서. 세상의 눈에는 저희 가족의 빈 공간이 커..
송년 미사를 마치고 들어와 잠깐 한해를 돌아보다가 이 사진을 본다. 하루 종일 성탄 준비하느라 성당에서 동동거리다가 저녁기도 시간에 맞춰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 잠깐 찍은 사진이다. 보나마나 성야나 대축일 당일엔 막상 초 깎고 제의실 치우느라 구유 앞에 고요히 머물 시간이 없을테니 피곤한 몸도 좀 쉴겸 미리 예수님을 좀 보자 싶었다. 아무도 없는 성당. 퇴근하면서 켜두는 십자가 등을 미처 끄지 않고 구유의 반짝이를 켠 후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한동안 구유의 아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십자가 예수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순결하고 가난한 아기로 태어난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막 태어난 아기 예수가 세상에서의 삶을 온전히 완수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올려다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의 시작들을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