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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14장 (9)
깊이에의 강요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루카 14,13) #dailyreading 예수님께서는 내 곁이 자신들의 당연한 자리라고 생각하는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말고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 오늘은 이 말씀이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한 지도자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다가오려는 사람 말고, 가까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해야 한다. 이는 막연히 좋은 말씀이 아니라, 애써 지켜야하는 예수님의 명이다. 사람은 나이가 드는 것만으로도 남보다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나역시 피차일반인 사람이 아니었던가. 낮은 사람으로 살아도..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루카 14,8-9) 자처한 윗자리는 내 것이 될 리 없다. 나아가, 내가 앉는 자리가 ‘나’는 아니다. ‘나’는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일 뿐. 그러니 어디에 앉을지를 걱정하지 말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자.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절). 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의 십자가... 살다보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지만 부당하다 생각되고 나만 겪는다 싶으면 감당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기쁜 일도, 버겁고 서러운 일도 모두 ‘내’ 삶이기에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짊어질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비로소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첫자리에 두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며 내 십자가를 예수님 바로 다음에 두어서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것도 제자의 삶이요, 내 삶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루카 14,5) #dailyreading 안식일에 수종 병자를 고친 일이 안식일법을 어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너희’라면 어땠을까를 물어보셨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시비(是非)에 덜 갇힌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내가 맞는데...’, ‘내가 나은데...’ 싶을 땐 더더욱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한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맞더라도, 내가 옳더라도 다시 한 번.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하고 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루카 14,17-18) 양해를 구히기 시작했다는 말에 머물게 된다. 양해를 바라기만 하고 먼저 이해하는 노력은 늘 부족하구나. 양해를 구하기에 앞서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며 살자.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 #dailyreading 때론 보답이 다른 데서 온다. 나의 선의를 받은 자들이 돌려주지 못한다 해도... 키우지도 않은 내가 이 푸른 것들로부터 받는 게 있다. 어디 푸른 것들만 그런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미워해야' 한다니...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과연 이 길을 시작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셈족 표현에선 비교급이 없어 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길이 없어 굳이 '미워한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했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거슬리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둘째로 두어서 첫째로 둔 것보다 소홀하게 대한다는 뜻이란 설명을 수십년째 들었어도 '예수님이 정말 내 인생에서 첫번째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주저하지 않은 순간은 드물었다. 다른 것들을 미워해야 해서 시작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미워한 적이 있어서이다. 더 사랑하라는 말이나 용서하라는 말 앞에서, 알면서 쓴약인 줄 알고 버티는 마음보다 약이 아닐거라며 듣고 싶지 않으니 날 내버려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기 ..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쓰리고 아린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는 이 쓰리고 아린 사랑의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 물론 초대를 받고 나는 또 얼마나 제자리를 맴돌며 서성였던가. 이곳에 와서는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교리교사들에겐 간식을 가끔 해주곤 했었다. 그리고 엘에이에 있는 동안 가끔 함께 렉시오 디비나 모임을 하던 청년들에게 밥을 해줬었다. 따뜻한 밥 한끼 해 먹이고 싶던 마음. 아름답고 분주하고 넓고 외로운 도시에서 도시처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솜씨가 있든 없든 엄마처럼 따뜻한 한국인 밥상을 그렇게도 차려주고 싶었다. 엄마처럼 밑반찬을 만들어서 제발 혼자서도 잘 챙겨 먹으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오늘 예수는 왜 나의 사랑을 방해하는가. 내 친구나 형제처럼 편하고 마음 가는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