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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6장 (1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상대의 답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아니라고 하셨대도 아닐 수 없는 일. 아닌 척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가장 먼저 속인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dailyreading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15절) 유다는 이미 값을 재어봤고 계산을 끝냈다. 수석 사제들도 알고 자신도 안다. 그래서 딱하다. 나도 종종 딱하게 산다. 유다는 지금 진짜 아닌 것이 아니라 아닌 척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돈 서른 닢을 받았고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이 꿰뚤렸을 것이고, 속이고 싶은 욕심과 속이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회심이 아니라 거짓으로 날려 버렸다. 시늉으로는..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마태 26,15-16) 복음을 읽다가 유다가 변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나 역시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마치 유다의 마음 속에라도 들어가 본 것처럼, ‘처음부터 팔아 넘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냥 얼마를 주는지만 알아보려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 안의 유다 이스카리옷. 이런 변명을 숱하게 봐 왔다. 괴로운 기억이지만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시작하고 수사가 진행되자,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만 했다, 정말인가 싶어 돈을 보내보기만 했다,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 모두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마태 26,25) #dailyreading 천 번을 말한들 ‘아닌’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 오로지 하지 않았을 때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을 뿐. 굳은 다짐만으로도 부족하고, 뜨거운 후회의 눈물로도 씻을 수 없다. 다만 그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만 우리는 ‘아닌’ 사람이 된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수백 번, 수천 번을 묻는다 해도 묻는 것만으로 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를 바꿔 물어본들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행동을 달리해야 답이 달라진다. 팔아넘기지 않았어야, 팔아넘길 사람이 유다가 되지 않았다.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행동을 고치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 '그렇게 말한다'.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한결 같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될 뿐.
아무리 짧은 두 절 분량이라고 해도 조롱 섞인 비아냥 같은 말들은 듣는 것도 읽는 것도 힘들다. 속으로 그려보는 건 더더욱 그렇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조롱과 모욕, 폭력을 극대치로 마음껏 표현한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렇게 사악하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평상시를 살아갈까 싶은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을 고문하던 이들도 멀쩡하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신마저 죽이려드는 것도 이해가 될 듯 하다. 예수님을 처참하게 뭉개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른다.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 우리는 생각지도 못하는 비참한 상황에서 예수님..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던 베드로에게 하녀 하나가 와서 말했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개인적인 질문이었을텐데 베드로는 질겁해서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다. 지금부터의 베드로의 말은 공개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예수님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다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베드로. 차마 예수님을 모른다는 말을 처음부터 할 수는 없었나 보다. 영문도 모르겠다면서 이 상황 자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로 대문께로 빠져 나가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 만났다. 이번엔 다른 하녀가 베드로를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하고 말했다. 이번엔 그녀가 많은 이들 앞에서 베드로를 드러냈다. 그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계획대로 카야파 대사제의 저택에서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당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 베드로만 멀찍이 떨어져서 잡혀가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다. 베드로는 당당히 따라나서지도, 영 배신하고 떠나버리지도 못했다. 결말을 보기 위해(58절) 어정쩡한 상태로,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안뜰로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았다. 결말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갔다는 말은 아직 완전히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불보듯 뻔한 결말인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진 않았나 보다. 베드로는 대사제의 시종들과 함께 앉아 있다. 자신도 모르게, 참된 대사제의 시종으로 그 참된 대사제의 수난의 시간에 참여한다. 베드로의 모습을 그려보다가 이내 내 모습을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