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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4장 (6)
깊이에의 강요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루카 4,27) #dailyreading 나는 저 시대에 나아만만 깨끗해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아직 젊은 시몬이 먼저 하늘로 떠난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진을 치듯 앉아 있어도, 묵주를 잡고 공원을 수바퀴 돌아도, 복음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어도 그렇다. 다만 내가 얼마나 ‘그래야만 한다’고 고집하며 살았는지를 조금 깨달을 뿐이다.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엔 모두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랐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의 태도가 변합니다. 어떤 생각이 끼어들었기에 태도가 변했을까요? 네, 바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입니다. 이 말은 상대를 안다는 선입견, 상대가 별것 아니라고 얕잡아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사람과만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과도 멀어지게 합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에서 떨어트리려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유유히 그들을 가로질러 떠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랐던 이들이나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며 얕잡아 본 사람이나 예수님을 벼랑에서 떨어트리려고 한 이들이나 결국 같은 사..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공생활이 시작되기 전, 예수님의 첫서원 같은 장면. 오늘은 이 장면에 머물러야 했다. 이는 성경을 제대로 들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분명 말씀 봉독이 끝났는데(두루마리를 말아 돌려주셨다 20절),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말씀을 읽는다(듣는다)는 것은 그 기록된(17절) 텍스트를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 22절)을 들어야 한다. 요즘 또 렉시오 디비나가 쉽지 않다. 아니, 여태껏 쉬웠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다시,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기록된 말씀을 읽은 후 들리는 예수님 말씀이 자꾸만 나를 관통하기 때문..
상대를 안다는 선입견, 상대가 별 것 아니라고 얕잡아 생각하는 교만은 사람과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과도 멀어진다. 묵상을 할수록 되돌아 볼수록 나도 그랬을까... 싶으면 곧 나도 그랬구나 하게 된다. 산날보다 살날이 짧은데도 참 어렵지.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6-27) 예언자가 이방인들 찾았고,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예언자를 찾아갈 힘조차 남지 않은 과부, 아쉬울 것 없는 군대 장수가 치유 받았다. 인간은 종교, 신분 고하, 재물에 따라 수도 없이 경계를 정하지만 하느님께는 경계가 없다. 주님, 제가 살면서 그어 온 수많은 선들을 부단히 지우며 살아가게 하소서.
해마다 사순 1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은혜로운 회개의 때를 시작하면서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어 우리도 유혹을 이겨내라는 뜻이겠지요. 마르코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유혹받으신 이야기만 전하지만, 마태오와 루카에는 그 기간이 끝난 후 또!! 유혹받으신 장면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번 주 복음에서 예수님을 lead하는(이끌고 데려가는?) 세력이 2가지가 나오는데요, 한분은 바로 성령이시고 또 한명?한놈?은 악마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두 가지의 세력이 한꺼번에 우리는 끌어당깁니다. 문제는 이끌려 가는 그곳이 어딘가 하는 겁니다. 성령께서는 광야로 이끌어 가시고 반대로 악마는 높은곳, 성전 꼭대기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