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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달력 한 장 (145)
깊이에의 강요
치웨이 글, 그림. 조은 옮김. 작은별밭. 처음엔 순서대로, 그러니까 바로 들어서 읽고 연달아 거꾸로 들고 읽었다. 그런 후엔, 같은 페이지에서 들은 말과 전하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 다시 읽었다. 들은 대로 믿어버린 채 행동하지 않고 소를 찾아가 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소의 진심에 가닿기 위해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은 얼마나 귀한지. 어른인 나에게 이 그림책은 충분하다, “그랬구나!” 한 마디도 여러모로 충분해.
이은경 지음. 보림. 너무 읽고 싶었던 책.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도 기인 세월 책 덕에, 험한 세상?을 잘 넘었다. 깔깔깔 혹은 꽉꽉꽉 웃어가며 그 지난한 시간을 건널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나도 좀 보자.”
울리카 케스테레 글, 그림. 김지은 옮김. 문학과지성사. 소중한 날을 소중하게 보낼 줄 알도록 격려하는 이야기. 소중한 것을 조금은 소란스럽게 준비해도, 소중한 만큼 신나게 즐겨도, 소중하기에 혼자만 간직해도, 소중한 줄 알지만 심드렁하게 기억해도... 자기의 소중한 날로 기념할 줄 알도록. 그렇게 마침표를 잘 찍어서, 다음 문장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 한 장 한 장 너무나 예쁜 그림이라 한 장씩 고이고이 편지봉투를 만들고 싶었다.
엘함 아사디 글. 실비에 벨로 그림. 이승수 옮김. 책빛. 이란의 엘함 아사디 작가가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노타이프 판화 그림부터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동화책. 우리도 이렇게 기다리며 살고 있겠지. 내 삶을 충실히 살아내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우리, 우리가 달콤한 꿈 속을 거닐던 때에 찾아온 그 존재는 우리의 단잠을 차마 깨우지 못해 손가락에 장미 한 송이를 끼워 두고 조용히 떠나가고, 아쉬운 눈물을 닦으며 매년 언 땅이 풀리고 바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생명을 잉태하는 때가 되면 찾아올 그 존재를 또 기다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기다리는 행복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거든.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 마리옹 뒤발 그림. 이하나 옮김. 앙통의 수박밭은 완벽했다. 누군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앙통은 그 빈 자리를 볼 때마다 수박밭 절반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생각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루카 7,32) 어긋나는 건 '너'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문제다. 널 위해 피리를 불었더라도 네가 춤추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요구할 수 없는 일이고, 날 위해 피리를 분 걸 알면서도 춤추지 않는 건 너 때문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다. 살다보면 누군가가 내 밭에서 수박 한 통을 훔쳐가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밭이 온통 엉망이 되는 건 아니다. 안타깝지만 잃어버린 수박의 빈..
신민재 그림책. 길벗어린이. 나무가 살아가는 것도, 나무가 사라지는 것도, 나무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살아가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행복도, 눈물도 홀로 되는 것이 아니겠지. 서로 주고 받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나무가 그 나무가 아니었어.
권정민 그림책. 창비. 며칠 전 '적절한 좌절'에 관한 글을 읽었다. 나 역시 모퉁이를 돌면서, 벽 앞에 서서, 장애물을 치워가면서, 햇빛을 맞고 비바람을 통과하면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무언가가 지나가도록 내 걸음을 멈추면서 배우는 게 있다고 믿는다. 이 배움은 삶을 무르익게 하는 '뜸' 같은 것이 아닐까. 물을 붓고 뜨겁게 끓이기만 한다고 쌀이 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기를 품은 채 뚜껑을 열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쌀알 속까지 열이든 수분이든 잘 배어들어 향긋한 밥이 되듯, 열기를 견디고 긴장을 견디며 기다리는 시간이 주는 무르익음. 비대면의 편리함과 신속성이 너무 쉽게,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있다는 걸 조금 섬뜩하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책을 덮을 즈음엔, 저녁이 사라지는 것은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