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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18장 (13)
깊이에의 강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19절) 마을을 모은다는 것은 그저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야 하는 일이다. 모의나 단순한 단합이 아니기에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자신의 뜻을 바꿔야 하고 누군가는 다른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너의 뜻이 나와 뜻과 같기만을 바라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고 더딘가 싶은 적이 많았다. 내 것을 포기하지도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떡하니 그 '하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를 바라는데 왜 이렇게 기도의 응답이 오래 걸리나 싶었는데 그 ..
예수님께서도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나 봅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도(그 사람의 잘못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 사람을 바로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잘못을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가 교회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하십니다. 이는 ‘너는 이제 상관하지 마라. 더 이상 네 책임이 아니다.’라는 뜻도 있지만 ‘이제는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구절을 마음에 잘 새겨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dailyreading 이 부분만 읽으면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싶어 나는 하느님이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한 비유로, 자신이 탕감 받은 큰 빚은 잊고서 친구에게 준 적은 돈은 멱살까지 잡아가며 받아내려는 종 얘기가 나온다. 눈물로 엎드려 빌던 사람이 그 큰 돈을 탕감 받은 후 돌아서 나오는 길에 친구의 멱살을 잡는 것이 인간인가. 나를 돌아보면 내가 해야할 일흔일곱 번의 용서 전에 내가 받은 수백 수천 번의 용서를 깨닫게 된다.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마태 18,32-33) 탕감 받은 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도 있고 용서 받은 사람으로 살 수도 있다. ‘이후의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큰 일을 겪고도 더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 비뚤어질 특권이라도 받은 것처럼 삶을 망가뜨리며 사는 사람… 운이 좋았다 생각하고 거기서 끝날 수도 있고 감사를 되새기며 은총을 자신 안에서 길어올리며 살 수도 있다. 다 잊고 사는가, 은총 속에 머무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누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에-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기에 누가 '가장' '큰지'를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들어가기 위해 지금부터 변화되어야 하는 자세를 알려주시면서 최상급의 표현은 아예 빼버리신다.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지금 여기에서부터 어린이처럼 되어가야, 낮은 자가 되어야 비로소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이란 겸손은 부..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dailyreading 나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기도,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기도인가… 나의 기도는 누구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바치는 기도인지 돌아본다. 혼자서만 바치는 내밀한 기도가 잘못일 리는 없지만 온전한 개인 지향도 예수님과 함께여야 할 것이고, 특히 수도자의 기도는 언제나 세상을 품은 채 타인을 초대할 수 있고 그들과 한방향이며 무엇보다 예수님과 함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 18,14)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은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온전한 하나임을 아는 것. 여럿 중 하나가 아니라 처음부터 온전한 하나. 하나 뿐이라는 말은 전부라는 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1절) 남이 아니라 나였으면 하는 바람, 내가 아니면 어떡하냐는 걱정으로 시작되는 질문.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먼저 말해준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3절) 회개.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들어갈 만한 사람이 되는 것, 회개이다. ‘큰’ 사람의 조건을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시는 예수님.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는 것. 제 생각에 아무리 크다 한들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조차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랴. 회개를 통해 어린이처럼 작아져야만 비로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