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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0장 (5)
깊이에의 강요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이렇게 마음이 묵직하게 아파온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이들처럼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싶어서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니 자본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일한만큼 돈을 받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할 기회가 공정하지 못했다면, 책임져야할 가족 등 반드시 필요한 돈의 쓰임새가 다르다면, 사람마다 느끼는 돈의 무게가 삶을 좌우할 만큼 차이가 난다면... 사실 이런 식의 질문들은 끝이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지만 내 안에서 들리는 질문은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2절) 정당한 삯을 주겠소. (4절) 분명 주인이 첫 번째 일꾼들과 합의한 삯은 한 데나리온이고 아홉 시쯤에 온 이들과는 정당한 삯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0절) 잊은 건가. 맨 먼저 온 이들은 자신들이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한 것을 잊은 건가. 잊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더 받는’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는가. 그들은 나중에 온 이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오늘은 이들이 ‘맨 먼저’ 온 이들이었음이 눈에 들어왔다. 성경은 중간에 온 이들이나 맨 나중에 온 이들의 반응은 보여주지 않고 ‘맨 먼저’ 온 이들의 투..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마태 20,22) 우리는 종종 내가 무엇을 청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기도를 한다.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고 때론 돌아서기도 하지만, 그 아픔의 시간을 보내면서 진짜 필요했던 기도가 무엇인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무심코 드렸던 기도의 응답에서 내가 놓치고 사는 무언가를 건져올리기도 하고, 간절했던 마음만큼 기도가 무르익어 가면서 기도의 지향과 나의 원의가 달랐음을 깨닫고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기도는 우리를 깎아내고 덧붙이면서 조금씩 변화시키며 완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내가 마시고 싶은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마시려는 잔을..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6) 열정이 크면 유혹도 크다. 이루려는 것이 높을수록 추락의 나락도 깊은 법. 낮아지겠다며 스스로 ‘낮은 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낮은 사람이 될 수 없다. 낮아지려면 남을 높여야 한다. 시소처럼, 혼자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없다. 시소를 타보면 안다, 남을 낮추지 않으면 높아질 수 없다는 걸. 남을 낮추고 나를 높여봤자 공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떨어지는 일 뿐이라는 걸. 높이 떠올랐는데 계속 높은 곳에 있다면, 그건 나를 받쳐주고 있는 상대방 때문이라는 걸. 발이 땅에 닿아야 뭐든 시작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