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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코헬렛은 그 너머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불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약의 신앙인이었던 코헬렛의 겸허함이다.”(안소근 수녀) 이 달엔 이 문장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죽음이 갈라놓은 이별을 생각할 때마다 서둘러 내가 믿는 신이 약속한 부활과 하늘나라가 떠올려 보지만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슬픔을 싹 가시게 해 줄 벅찬 기쁨을 상상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 싶은데, 왜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내 깊은 데까지 들이치는가, 무너질 정도로 내 삶을 흔드는 일들이 생기는가 질문하게 된다. 탓할 만한 잘못이 내게 있었다면 답하기가 쉽지만, 스스로 성실히 걸었다 싶을 땐 쉬이 답이 찾아지지 않아 기도조차 어려워진다. 때가 되어 내리는 ..
우리 인류의 전형인 아담과 하와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하느냐, 신으로 생각하느냐에 다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신과 유사한 존재로 본다면 그들은 진리를 알면서도 진리를 무시하고, 높은 곳에 올랐으면서도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겨 엄청난 실패를 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충동적인 사기꾼이자, 인류에게 가장 황당한 존재다. 그러나 사실 아담과 하와는 인간이며, 천사와 같은 존재도 아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은 것은 가장 인간적인 일이었다. 선아과나무 앞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기는 하나 결국 실패를 통해서만 자신의 행동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그것이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배워야 할 교..
답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처음을 생각한다. 훌쩍 떠나서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마음 먹었을 때의 심정. 언니에게 수녀원에 가야겠다고 말하던 그 순간의 내 결심. 수녀원 봉쇄구역을 처음 들어서던 때의 감정. 입회 첫 날 밤,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세웠던 다짐. 그 이후에 처음을 생각하며 처음처럼 먹었던 마음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는 '떠남'으로 시작한다. 그때까지의 삶은 성경엔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떠남'을 묵상하면 할수록 이 후의 아브라함이 범한 실수가 자꾸 파고든다. 모든 것을 두고 먼 길을 떠난 아브라함이지만 그 이후의 삶이 매순간 '떠남'에 걸맞지는 않았다. 이 사실에 대한 묵상은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브..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죽이기로 결심한다.순간의 욕심에 눈이 먼 다윗은 또 다른 죄를 저지르기 위해 치밀한 계획까지 세우고,당면한 문제인 전쟁도, 여태껏 자신을 돌보아주셨던 하느님의 은혜도 잊어버린다. 충직한 우리야는 다윗의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 따른다. 가슴을 손을 얹은 채 돌아서는 우리야.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우리야의 가슴과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또한 당신께서는 저를 존귀한 사람으로 보아 주셨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성경은 역대기 상권. 17,16-27 다윗의 감사 기도를 묵상한다. 수많은 곤경에서 자신을 구해주시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만군의 주 하느님께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주님의 계약 궤를 모실 곳을 지으려는 다윗에게 하느님은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은 주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게다가 당신을 위하여 집을 지을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 중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느님의 집을 짓게 된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솔직히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조금 불편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