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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다윗의 감사 기도(1역대 17,16-27) 본문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또한 당신께서는 저를 존귀한 사람으로 보아 주셨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성경은 역대기 상권. 17,16-27 다윗의 감사 기도를 묵상한다. 수많은 곤경에서 자신을 구해주시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만군의 주 하느님께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주님의 계약 궤를 모실 곳을 지으려는 다윗에게 하느님은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은 주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게다가 당신을 위하여 집을 지을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 중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느님의 집을 짓게 된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솔직히 이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조금 불편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윗 임금이, 다른 마음도 아니고 감사해서 성전을 짓겠다는데 그걸 굳이 만류할 필요가 있으셨을까. 주님의 계약 궤가 천막 아래 있는데 자신은 향백 나무 궁에 살고 있음을 죄송스럽게 여긴 다윗의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생각. 게다가 다윗은 안 된다 하시고 곧바로 이어서 주님의 집을 지을 사람은 ‘네가 아니고 네 후손이다’하시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노여워하지 않는다. 왜냐고, 왜 나는 아니냐고 묻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사랑만도 넘치는데 당신은 부족하다 여기시어 더 넘치게 주신다며 감사한다. 왜 내가 아니라 나의 후손이냐 묻지 않고 오히려 먼 장래 일까지도 일러 주신다고 감사한다. 덧붙여 자신을 존귀한 사람으로 보아 주셨다고 고백한다.
여태 ‘굳이 왜 이러시냐?’에 발이 묶여 묵상이 깊어지지 못했다. 그동안 다윗 핑계를 대며 내심 섭섭했던 감정을 드러내보기도 했고, ‘그걸 꼭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하느님 마음이니까’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보기도 했다. 다윗 임금 덕에 깨달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렇게 마흔이 넘어 또 한번 다윗 임금한테 한 수 배운다. 기뻐하고 감사할 일 수백 개 제쳐두고 서운한 일 한두 개에 매달리는 인생 낭비는 이제 그만하라는 말씀이구나.
오늘 청년 하나와 면담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든 사람에게든,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에 아궁이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고 쭈그리고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연기 때문에 눈은 맵고, 열기 때문에 점점 더워지고, 다리는 자꾸만 저려온다. 하지만 ‘열심한 마음’ 때문에 아궁이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덥다고, 맵다고, 다리 아프다며 하소연한다. 열심히 불을 지핀 후에 장작 몇 개 더 던져놓고 아궁이를 떠나 바람도 쐬고 꽃구경도 하고 사람도 만나면서 즐기다가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들여다보면서 책임을 다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 채 울상을 짓고 하느님께 원망한다, 난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고생 속에 사냐고...
농담 반 진담 반, “00야, 이제 아궁이 앞에서 좀 물러서.”하고 말했다. 속으로 덧붙여 나 자신에게도 속삭였다, “이제 너도 아궁이 앞에서 좀 물러서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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