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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요한 20장 (11)
깊이에의 강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 다른 누구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도 넘어선, 토마스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순간. 토마스가 비로소 부활을 만나는 순간. 죽음의 상처까지도 모두 보여줄테니 만져보고서라도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시는 예수님. 떠나고 의심했던 과거가 있더라도 괜찮으니 주저하지 말고 오라는 예수님. 그림을 보고 나니 상처를 보여주시는 예수님이, 부디 다 떨쳐내고 다시 당신께 오라는 예수님이 얼마나 따뜻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그 따뜻함에 의심했던 토마스가 얼마나 마음을 놓을 수 있었을지도 짐작이 간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신 후 오히려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사흘 전 참담한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신 분이,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제자들이 떠나가는 비통한 배반을 당하신 분이,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기쁨으로 채워주시며(20절) 하셨던 말씀,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분의 표정과 목소리는 어땠을까요. 자신의 평화가 아니라 제자들의 평화를 비는 예수님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번 주 복음은 잘 보여줍니다. 오늘은 성령을 주신..
이번 주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a)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 두려움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종종 문을 잠가 놓고 삽니다. 닫는 정도가 아니라 잠가 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다가와 문을 여는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도록 그렇게 문을 꽁꽁 잠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절b)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문을 잠갔는데도 들어오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사..
복음의 장면을 하나하나 마음 속으로 그려보며 묵상을 하다보니 뒤로 갈수록 마치 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서서히 빛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인데, 두 제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후(10절)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흔적만 남은 빈 무덤이었던 곳이 천사와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늘 나라로.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요한 20,14) 천사와 예수님 사이에 있는 막달레나. 이 놀라운 공간에서 누군들 예수님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1절)부터 예수를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 이 애타게 찾는 마음 앞에서 그 텅빈 공간은 변화했다. 흔적만 남은 공간에서 ..
보고 믿었다. (요한 20,8) 누가 주님을 꺼내 갔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에 무작정 예수님을 보려고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 그들이 본 것은 덩그러니 개켜 놓여진 아마포와 수건, 빈무덤이었지만, 그들은 그 빈무덤을 보고서 믿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었다. 그러니 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믿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의 믿음을 더 단단하게도 하고 반대로 어둡게도 할 수 있다. 보여지는(그분이 보여주시는) 것이라면 빈무덤을 보고서도 부활하신 분의 존재를 믿을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증거만을 찾는다면 우린 아주 오래도록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요한 20,27) #dailyreading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내게 너무나 큰 힘이자 위로였다. 하지만 살다보니 상처가 남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상처가 남아 있는 채로의 부활보다 더 위대한 것은, 상처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일이 아닐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를 혼자 간직하며 사는 사람도 많고, 끊임 없이 상처를 주위에 전시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다.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헤집으며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세상...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려움에 떨며 덧나도록 상처를 ..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a) 마치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처럼 나도 수시로 문을 잠가 놓고 산다. 닫는 정도가 아니라 잠가 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다가와 문을 여는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도록 그렇게 문을 잠글 때가 있다. 그 날, 제자들도 그랬나 보다. 두려움에 떨며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잠가 놓았는데 예수님이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절b)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 문을 잠갔는데도 오셨다. 그 날 예수님이 어떻게 들어오실 수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부질 없겠지만, 빗장까지 걸어놓은 내 안으로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