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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마리아는 천사의 뒷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보았을까... 오늘은 이 마지막 문장에 자꾸 눈길이 갔다. 오늘은 내 심정이 성모님보다 천사 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천사처럼 조용히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다 지켜보지 못한다 해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섭리를 자잘한 내 말과 내 생각을 고운 채에 걸러내고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골라내어 건낸 후, 전한 말씀이 이루어낼 그 모든 일들을 품은 채 미완성이 아니라 확신 속에서 묵묵히 돌아서서 떠날 줄 아는 삶. 그렇게 다가서고 그렇게 돌아설 것.
우리가 바쳐야할 시간경 중에서 나는 끝기도를 가장 좋아한다. 우리 수도회의 찬미가 멜로디도, 시편들도(특히 91편),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라고 노래하는 응송도,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시므온의 노래도, 성모찬송도 모두 좋다. 이번 주 복음에는 “이제는 놓아 주소서” "이제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떠납니다" 등으로 번역되는 Nunc dimittis(시므온의 노래)가 나온다. 이제 보았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는 시므온의 고백. 그는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다. 주님의 그리스도를 보길 희망한 것도 맞지만 시므온은 '보여주시는 때'를 기다렸던 사람이다. 보여주실 때까지 떠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것. 그래서인지 우리 수도 서원의 ..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루카 1,34-35) #dailyreading 나는 하지 못해도(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분은 하신다(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묵상과 함께 떠올린 말씀. “안젤로야, 너를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황 요한23세께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일기장에 자주 적으셨다는 이 말을 오늘은 내 마음에 새겨본다. “성심아, 너를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곰곰이 생각하였다.(28절)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복음을 묵상하다가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천사의 말 말고, 성모님의 대답(반응)만 따로 떼어서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이런 태도로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꼭 두렵고 떨리는 중대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내키지 않아 한마디 말도 하고 싶지 않다거나 한사코 미루고만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 ‘지금도 이후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염려하다가 그 일이 이루어져야하는 진짜 이유는 ..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루카 19,21) 오늘은 14절(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에 걸려서 묵상이 잘 넘어가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단히 미워하는 것이 오늘따라 견디기 어려웠던 것. 내가 다 속이 상해서 감정만 끓이다가 좀 가라앉고 나니 곧 애초 그 종의 마음 그릇이 그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을 품삯이 아닌, 주인으로부터 거저 받은 돈을 쥐고서도 ‘거저 주시는 분’의 혜량은 깨닫지 못하는 정도의 그릇 말이다. 열매 맺은 나무가 영글은 열매를 내놓지 않으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루카 13,19) 먼저 겨자씨를 가져다가 ‘내 정원’에 심을 것. 사람 사이도 그렇고 사회 생활도 그렇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내 자리를 내어주고 뜻과 방식, 규범 등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를 이어가기가 만만치 않고 공동체에 자리잡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 고된 노동보다 힘들 수 있다. 하느님 나라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내 안에 자리잡도록 나를 내어놓지 않고서는 내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방도가 없다. 하느님 나라에 영원히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 안에 하느님 나라를 마련해야 하는 법. 그러니 겨자씨를 정원에 심듯, 내 안에서 하느님 뜻이 단단히 뿌리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복음말씀을 묵상하노라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데요, 특히나 순교성인들을 생각하며 오늘 복음을 들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끝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며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후 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이 먼저 죽음을 각오했다고 하시는데, 뒤따라가겠다 말하지 못할 제자가 누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번 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 자신을 버리고 /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 나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