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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루카 5,22) 근래 나를 계속 흔들던 생각, 나를 끊임없이 가라앉게 한 생각은 '속으론 안 그랬구나.'였다. 이 생각은 곧 속았다, 속였다로 이어졌고 침묵으로만 기도하는 시간, 글 한 줄 읽지 못하는 시간,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던 시간, 부유하는 생각과 감정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다리며 타인을 공격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과 귀를 닫고 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내게도 질문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나무라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아시는 그들의 생각(22절)은 '딴마음'이 아니라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자연도..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6) 상대를 속여 가며 물건을 파는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을, 자기 자신마저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행위들이 성전을 성전이지 못하게, 성전을 '기도의 집'이 될 수 없도록 만든다. 나의 게으름, 부주의, 무관심, 이기심, 미움, 조급함... 오늘은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내 마음속에 온갖 언어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괴로워 성체 앞에 앉았는데, 소란하기만 하고 좀체 가라앉지 않던 것들이 겨우 잠잠해지고 나니 그제야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곳을......’ 예수님 목소리 덕에 내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dailyreading 며칠 전 예비자 성지 순례로 성모당을 갔다가 이 표지판을 봤다. 그 길을 걷던 나는, 우리는 그 순간이 행복했기에 이 표지판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좀 더 걷다가 생각했다. 내 마음이 그리 행복하지 않을 때도 이 길이 ‘행복의 길’이 될까, 함께 걷는 이들이 힘든 순간을 겪는 중이라면 나 혼자 행복하다고 해서 이 길이 ‘행복의 길’이 될 수 있을까. 표지판은 표지판일 뿐 잘 보이도록 둔다고 진짜 행복의 길이 되는 것이 아니듯 하느님 나라도 잘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하고, 나 홀로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너희)가 어우러져 하느님 나라를 살..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루카 14,13) #dailyreading 예수님께서는 내 곁이 자신들의 당연한 자리라고 생각하는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말고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 오늘은 이 말씀이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한 지도자에게 하신 말씀이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다가오려는 사람 말고, 가까이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해야 한다. 이는 막연히 좋은 말씀이 아니라, 애써 지켜야하는 예수님의 명이다. 사람은 나이가 드는 것만으로도 남보다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나역시 피차일반인 사람이 아니었던가. 낮은 사람으로 살아도..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루카 14,8-9) 자처한 윗자리는 내 것이 될 리 없다. 나아가, 내가 앉는 자리가 ‘나’는 아니다. ‘나’는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일 뿐. 그러니 어디에 앉을지를 걱정하지 말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자.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루카 13,21) 오늘 아침엔 ‘마침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삶과 함께 하는 삶의 차이. 누룩 없는 빵과 누룩을 넣은 빵. 누룩을 넣은 후 부풀어 오른 빵처럼, 늘 내 곁에 계셨지만 내가 내 삶 안으로 그분을 초대한 후 내 삶을 서서히, 그러나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확장된 삶. 여전히 내 자리에 살지만 내 삶은 그분에 의해 조금씩,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루카 12,11-12) ‘해야 할 말’에 대해 생각한다. 성령께서 알려 주실 '해야 할 말'에 대해서. 내맘대로 하는 말, 별 생각 없이 하는 말, 상대를 아프게 할 요량으로 하는 말, 진실이 아닌 거짓말, 두렵고 떨려서 삼켜버린 말... 말고 해야 할 말에 대해서. 어떻게 답하고, 무엇으로 답하고, 무엇을 말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모른 채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만들어 내느라,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해야 할 말'은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산책을 하다가 나무 밑둥 주위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낙엽들을 보았다. 나무에게서 떨어져 내린 마른 잎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카 11,27-28) While Jesus was speaking, a woman from the crowd called out and said to him, “Blessed is the womb that carried you and the breasts at which you nursed.” He replied, “Rather, blessed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observe it.” 과거(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