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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루카 6,38) 아버지께서 내게 자비로우시지만 내가 아버지께 자비로울 수는 없는 것처럼, 내가 주는 사람과 내게 주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 준 사람에게서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라(간혹 그러기도 하지만) 그분에게서 받는다, 넘치도록 후하게. 그러니 우리는 다만 심판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고, 단죄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고, 용서하려 노력할 뿐이고, 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심판받지 않기 위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단죄받지 않으려고 단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으려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도 메마른 겨울이었다. 타들어가는 논과 밭을 위해서 비를 기다렸고..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6,45) 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은 정말 인간을 잘 이해하고 계시는구나 싶습니다. 이번 주 복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정곡을 찌르는 말씀은, 너무나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치게 하지는 않습니다. 단죄가 아니라 구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구원 의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저 사람이 속은 안 그런데 표현만 저렇게 함부로 해.”라고 두둔하거나 “내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라고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속마음은 너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데 표현만 공격적..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엔 모두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랐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의 태도가 변합니다. 어떤 생각이 끼어들었기에 태도가 변했을까요? 네, 바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입니다. 이 말은 상대를 안다는 선입견, 상대가 별것 아니라고 얕잡아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사람과만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과도 멀어지게 합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에서 떨어트리려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유유히 그들을 가로질러 떠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랐던 이들이나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며 얕잡아 본 사람이나 예수님을 벼랑에서 떨어트리려고 한 이들이나 결국 같은 사..
내 계획만 생각해서 길을 나서고, 내 짐작만 믿어서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고, 내 애쓴 수고만 생각해서 찾은 안도감보다 속상함이 먼저고… 예수가 내 옆에 없다고,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고 원망했던 순간을 되돌아 보면 내멋대로 계획하고 내 짐작만 믿고 내 노력만 가상해서, 내가 예수를 두고 떠났다는 건 까맣게 잊었음을 알게 되더라. 살면서 잊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들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45절) ‘성전’(46절)에서 찾아낼 수 있길 다짐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dailyreading 오해를 받을 것이고 쉬이 끝날 리가 없으며 외롭고 험난한 길이 될 줄 알면서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나 하나쯤이야 하며 내 앞으로 난 길만을 걷는 게 아니라, 나여야 한다고 굳이 남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인데도 아무도 가지 않으려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길을, 길인지 조차 알기 어렵고 혹은 목적지마저 가려져 있는 그 먼 길을, 한 발 한 발 길을 내면서 나아가는 것.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루카 21,4) 부자들의 봉헌엔 여태 아무 말 없었던 분이 왜 빈곤한 과부의 봉헌을 보시고 굳이 입을 여셨을까 생각한다. 속좁은 나였다면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은 부자들의 봉헌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았을 텐데, ‘모두’들 ‘조금씩’ 떼내어 준 일에 대해 더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서로를 위해서, 해야하는 말과 삼가해야 하는 말이 있다. 내 분통이 터진다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까발리듯 말해버리면, 내 자존심이 다쳤으니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남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얼마 못 ..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 18,41) 혼탁한 세상 속에도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선의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후회로 가득 찬 내 안에서 아직 남아 있는 첫 마음과 열의를 아직은 돌아설 수 있을 때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비록 내 삶이, 그의 삶이 까맣게 타고 남은 잿더미 같을지라도 희미하지만 반드시 남아 있을 당신 사랑의 불씨를 찾아내게 하소서. 비록 돌아섰었더라도 다시 한 번 돌아서서 내 안의 당신을, 그 안의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루카 13,18-21) 일 년에 두 번씩 휴가를 오다보니 조카들은 못 본 사이에 쑥쑥 자라서 청년이 되어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고, 언니 오빠나 형부는 한창의 시절을 지나 내려놓고 마무리하며 남은 삶을 생각한다. 물론 나의 시간도 함께 흘렀다. 주말의 피로와 긴 이동 시간은 휴가 첫날을 피곤하게도 하지만 저녁에 하나둘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하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웃어주고 새롭다는 듯이 안부를 묻는다. 너의 일에 기뻐하고 나의 일을 염려하고, 또 너의 일에 화도 내고 나의 일에 감사하며 함께 식사를 한다. 노곤하면서도 기분 좋은 평화로운 시간.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이런 휴가를 보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