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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경험하고도, 수난과 부활 예고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니면서,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수난을 겪어야 하고 수난 후 부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참 쉽게 잊고 삽니다. 루카 복음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이 수난과 부활 예고는 사실 다른 공관 복음과는 달리 수난에 관한 언급(넘겨질 것이다)만 있고 부활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두 번째 예고이기 때문인지, 부활 없이 수난만 언급되었기 때문인지 저는 이 복음을 읽으며 저의 두 번째 서원, 첫서원 이후의 서원 갱신을 떠올렸습니다. 서원 갱신 미사는 첫서원 미사와 달리, 마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오늘 복음처럼, 화려한 성당 꽃꽂이나 장궤틀에 씌우는 하얀 레이스가 없었고 서원장마저도 백지였습니다. 갱신을 하고 나서 수건 모양이..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루카 8,21) 오늘 나의 묵상은 예수님께서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들인데, '나'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음에 머문다. 우리는 흔히 내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무리를 이룬다. 물론 뜻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하는 그 잠시나마도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내 뜻이 언제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하는 큰 도리, 즉 대의(大義)'는 아닐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나의 사람들'로 만들기를 거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보다 내뜻, 우리뜻에 맞는 사람들로 교회를 이루길 원하기도 하고 내뜻, 우리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쌓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26절) 예수님을,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부끄럽다’는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면,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라고 나옵니다. 떳떳하지 못한 상태, 조심스럽고 어색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은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소 언제 부끄러움을 느끼시나요? 비뚤어진 세상은 우리에게 돈이 없을 때, 재능이 부족할 때,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했을 때, 자식이..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루카 7,13-14) 아들을 잃은 과부에 대한 예수님의 측은한 마음은 곧장 행동으로 이어졌고, 큰 무리의 사람들(12절)도 걸음을 멈추고 동참했다. 우리들이야 아침 묵상을 간직하고 하루를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오늘은 특히나 이 말씀과 장면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바람 부는 길을 걷다가, 미사 때 오르간을 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문득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때마다 관을 메고 가던 이들, 예수님을 만나 멈추어 선 이들을 생각했다. 나는 오늘도 '멈춤' 앞에 멈추었구나. 남편도 없는데 외아들마저 잃은 과부(성모님처럼)를 위해 기꺼이 관을 메고 간 사..
쨈 뚜껑이 굳어서 잘 열리지 않을 때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저는 아침식사 때 내린 커피가 남으면 보온병에 담아 두는데 가끔 뜨거운 커피를 부은 다음 바로 닫아버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팽창했던 공기가 압축되어 내부 압력이 낮아져서 나중에는 아무리 힘을 줘도 뚜껑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이 조금 더 세면 뚜껑을 누르는 압력 또한 커서 마찰력이 증가해서 뚜껑이 잘 열리기도 합니다만 수녀원에서는 센 힘이라고 해봐야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저는 그럴 때 고무장갑을 끼고 뚜껑을 엽니다. 수술용 비닐장갑도 괜찮습니다. 이도 저도 없을 땐 고무 밴드 두어 개를 뚜껑에 빙빙 둘러놓고 열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열리게 됩니다. 더 센 힘으로 마찰력을 크게 한 것이 아니라, 고무라는 물질에 의해 마찰력을 높였기 때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절). 예수님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의 십자가... 살다보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지만 부당하다 생각되고 나만 겪는다 싶으면 감당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기쁜 일도, 버겁고 서러운 일도 모두 ‘내’ 삶이기에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짊어질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비로소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첫자리에 두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며 내 십자가를 예수님 바로 다음에 두어서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것도 제자의 삶이요, 내 삶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루카 6,3-4) 배가 고플 때 ‘먹는 것’이 늘 정답이진 않다. 많은 경우에는 먹으면 해결이 될 일이지만, 먹고 싶고 먹어야 하는 데도 먹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 나아가 배고픈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닌 이상 못 먹게 한다면, 목적을 잘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하게 하는 이유 못지 않게 '못하게 하는 이유'도 중요하니까. 더욱이 먹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나 아니면 그 누구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잘 들여다 보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하지 않을 것이고. 오늘은 성 그레고리..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루카 5,3) 일을 다 마쳤고 그물까지 씻고 있었지만 기꺼이 예수님을 자신의 배에 오르시게 하고 군중을 가르치실 수 있도록 다시 배를 저어 바다로 나간 베드로를 묵상한다. 나의 계획이 아니었더라도(내 일과가 끝났더라도) 예수님을 내 배 안으로 모셔들이고, 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배를 저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더 잘 가르치실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내 배를 타고 군중을 가르치실 수 있도록 내가, 홀로 들여야 하는 수고, 내가, 홀로 바쳐야 하는 시간, 내가, 홀로 받아들여야 하는 예수님의 계획. 잊지 말자, 그때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의 가르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