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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 (197)
깊이에의 강요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23절) 말 한마디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이 질문으로 이 사람이 자신의 무게로 구원받으려 하기보다 구원될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 자신의 구원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은 받게 된다. 문이 좁으면 못 들어가고, 문이 넓으면 수월하게 들어가고…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구원이 요원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소위 믿는다는 이들의 행실을 보니 저들마저도 안되겠다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대답이다. 기다 아니다로 답하시지 않는 분.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24절) 오늘따라 '들어가도록'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자꾸 머문다. 살다보면 '좁다'에 갇혀 '들어가는 일' 자체를 망설일 때가 있다. 들어가려고 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루카 9,29) 오늘은 이 구절에서 멈췄다. 어제 체감온도가 42도이길래 식사 준비하다가 천국 가겠다고 농담을 했는데 ‘변모 축일을 앞두고 변화할 준비를 하는거냐’던 어느 신부님의 농담이 떠나가질 않는다. 나는 그런 준비를 했던가. 나는 변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나는 변모를 바라기는 하는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 얼굴이 달라지고 번쩍였다. 기도하시면서 변모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얼굴 모습을 변하게 했고, 스스로 빛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도 그 빛이 닿았다. 빛이 닿고 비추어 지금 여기가 어떤 곳인지 드러나게 하고 내 마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대화는 조금씩 엇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맞아들이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내주려는(“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어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제자를 오히려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자신을 가로막는 것이면 어떻게 해서든지 치워버리고 목표를 향해 갈 길을 가려는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다른 마을을 통해서라도 예루살렘을 향하십니다. 우린 어떤가요? 내가 세워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아니다’로 결론 짓고 없애버리려는 제자들과 닮았나요, 아니면 자신을 막아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그대로 두시고 돌아서서라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과 닮았나요? 정의랍시고, 누군가를, 누군가의 행동을 용납하기 ..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60) 이웃과 친척들이 모두 그런 적이 없다며 안 된다고 할 때, 남편조차 말할 수 없어 함께 하지 못할 때 그녀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모두가 예전처럼 하자고 할 때 안 된다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 순간을 기억하지만 그에 앞서 엘리사벳의 의견 표명이 있었고 그 덕에 사람들이 즈카르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용감한 ‘안 됩니다’. 묵상의 시작은 엘리사벳이 아니었다. 이웃과 친척들이 부모 대신 이름을 지으려 하고, 아기의 어머니가 지으려는 이름을 막아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내키지 않는 마음을 따라가 봤더니 이윽고 엘리사벳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모님의..
이번 주 복음묵상을 하면서 가장 와 닿은 장면은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모습입니다. 생전(?)의 마지막 모습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의 스승님을 지켜본 제자는 거의 없었지만, 승천 장면은 모두가 다시 모여들어 지켜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은 "강복하시는" 모습입니다. 가장 힘이 필요했던 때에 모두 떠나버렸던 일에 대해 서운한 마음 한 번쯤 비춰도 될 법 한데, 강복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번 주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며 세상에 축복을 빌어주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나는 살아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음이다. 엠마오 장면은 언제나처럼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15절); 예수님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내 생각에 빠져 조급하게 나의 길을 갈 때, 오히려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분. 물으시자(17절); 예수님께 물어볼 생각조차 못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물어보시는 분. 어리석은 우리의 두서 없는 대답도 들어주시는 분. 이르셨다(25절); 어리석고, 알아보지 못하고, 믿는데 굼뜨기까지 한 제자들을 꾸짖기보다 차근차근 가슴이 뜨거워져 타오를 때까지 설명해 주셨다(27절)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29절); 더 멀리 가셔야하지만(28절),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붙드는 한 마디에 당신의..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루카 18,11-12) 설마 이 말씀이 단식과 십일조를 폄하하시기 위함이겠나. 강도나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를 편드시는 것이겠나. 다만 열심히 단식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한 결과가 남을 판단, 비난하는 거라면 오히려 안하니만 못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니겠나. 뭘 했고 안 했고 보다, 하느님 앞에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자신을 낮추는 ‘솔직?하고 투명한 내적 상태!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내 영혼에 더 이로운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나. 우리가 단식하고..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루카 4,27) #dailyreading 나는 저 시대에 나아만만 깨끗해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아직 젊은 시몬이 먼저 하늘로 떠난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진을 치듯 앉아 있어도, 묵주를 잡고 공원을 수바퀴 돌아도, 복음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어도 그렇다. 다만 내가 얼마나 ‘그래야만 한다’고 고집하며 살았는지를 조금 깨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