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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마르코 7장 (11)
깊이에의 강요
이번 주 복음은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에파타!"는 ‘열려라’는 뜻입니다. 이번 주는 '들어라', 특히 '말해라'하지 않으시고 "열려라" 하셨음에 대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 정도 하시고 치유 받은 이는 아예 말이 없고, 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만 웅성웅성 말을 합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이가 듣게 되고 말하게 되었으니 누구보다 말하고 싶었을텐데 정작 그는 별 말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듣고 언제든지 말할 수 있게 치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듣고 언제 말해야 하는지 '제대로'(7,35) 알게 되었나 봅니다. 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해야 할 때에 말입니다. 치유 받은 이의 침묵에 대해서 묵상하고 나니, 말씀 한 마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마르 7,34-35) 에파타…이것은 낫고자 하는 이의 기도가 아니라 낫게 하고자 하는 이의 기도, 나의 기도가 아니라 나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이다. 나의 기도가 아니라 그분의 기도로 열렸다. 그러니 여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것.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르 7,28) 오늘은 딸을 위해 예수님 앞에 엎드렸을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심정을 짐작해보며 묵상한다. 나라면… 나였다면… 오천 명도 먹이실 수 있는 분이 왜 이렇게 각박하게 행동하는가, 하지 않겠다고 한 마디만 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자존심까지 구기는가…라고 적어도 속으로 반박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여인은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왜 나는 자녀처럼 대하지 않느냐고 화내지 않고 자신이 예수와 자녀 같은 관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그녀는 이방인이므로 예수를, 하느님을 섬긴 적이 없다) 그래도 도와달라고 한다. 요구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비를 청한다는 자세. 자비란 내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마르 7,15) 나에게서 나오는 것 즉, 품은 생각, 마음 속 판단, 뒤돌아서 하는 뒷담화, 상처 입히는 날카롭고 험한 말, 생각 없이 뱉는 무례한 말이 나를 더럽힌다. 남도 마찬가지다. 그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내가 아니라 그를 망칠 뿐이니, 그 말에 걸려 넘어져 나 자신을 망칠 필요도 없다. 내게서 나온 것은 나를, 그에게서 나온 것은 그를… 하지만 참 어려운 일이지.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7,33-34) 요즘 '들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말일지라도 내가 말하는 것을 중지하고 상대가 먼저 말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런 후에라도 필요하다 싶을 때에만 말을 꺼내보는 것. 오늘 복음에서도 손을 얹어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귀를 먼저 치유하시고 혀에 손을 대셨다. 순서를 아시는 예수님. 먼저 듣는 것이 치유되어야 말도 제대로 할 수 있다. 귀가 먼저 치유되었기에, 잘 들을 ..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마르 7,28)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것. 이방인이라는 외적 제약에도, 자존심이라는 내적 제약에도 굴하지 말고 기도할 것.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기도할 것. 내 묵상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내가 나에게 당부하는 이 말이 예수님 말씀 같구나. 생각을 정리하기 힘든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문장 한 줄 완성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글로 쓴다고 해서 묵상에 충실한 것은 아니니, 이런 시간엔 말로 다 못할 기도를 그저 마음에 품은 채로 그분 앞에 머물자. 말하기 힘든 시간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트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마르 7,28-29)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계실 수가 없었던 예수. 아직 때가 아니라는 냉정한 거절에 물러설 수 없었던 여인. 원하진 않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청을 들으셨던 예수처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걸려 넘어지기보다 딸의 치유를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여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