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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27장 (4)
깊이에의 강요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3) #dailyreading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사람들이 변했다. 예수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도, 남의 말을 제대로 들어볼 생각도, 지금 하려는 내 말과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생각도 없다. 그 어떤 말에도 못 박으라는 소리만 지른다. 하지만 저 군중 중에는 분명 하루하루 고달프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병을 앓고 있거나 아픈 이와 함께 살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도, 가정에서 일터에서 종교 공동체에서 무시 당하고 억압 당하는 이들도, 단조로운 삶을 버텨가며 사는 이들도,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느낌을 떨쳐내며 사는 이들도 있었을 것..
아무리 생명이신 분이라해도 죽음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면 끝이 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저녁이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 요셉이 왔다. 십자가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고 많은 것이 가려질 수 있는 시간인 저녁에 찾아온 사람. 그는 빌라도와 독대를 할 정도의 사람이니, 재산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부자로 추정된다. 십자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이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거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관망의 자세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훌륭하고 인품도 좋은 사람. 그는 삶을 충실하게 살았을..
“엘리 엘리 레마 사박나티?”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그 시간에 하느님의 현존 속에 계셨다. 이 절규는 성부와의 완전한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삼위일체가 무너지는 순간. 생명 자체이신 분이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는 성자만이 아니라 성부 성령 모두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을 들은 사람들은 갈팡질팡한다. 여태 민첩하게 일관된 행동을 보이던 사람들이 혼돈에 빠져 이러자고도 하고 저러자고도 한다. 악의 세계는 혼돈이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찢어지고, 하느님의 현존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다.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된다. 예수는 죽으심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모든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가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넘겨졌다.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넘어간 것이다. 예수님과 시몬 모두 죄도, 명분도 없이 십자가를 졌다. 살다보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십자가가 내 삶에 나타날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죄가 있어 이 십자가가 내게 왔는가 싶을 때. 하지만 애당초 십자가는 예수님께도 시몬에게도 마땅하지 않았다. 이 십자가는 원래 예수님이 져야 하는 십자가가 아니라 인간이 져야 하는 십자가였다. 잘못된 방법으로 축적해온 자신들의 힘과 권력, 재물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예수님께 없는 죄를 만들어 누명을 씌우고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게나 마땅한 십자가였다.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십자가를 지는 것. 억울했을까. 예수님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