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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7,57-61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를 모신 사람, 요셉 본문
아무리 생명이신 분이라해도 죽음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면 끝이 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저녁이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 요셉이 왔다. 십자가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고 많은 것이 가려질 수 있는 시간인 저녁에 찾아온 사람. 그는 빌라도와 독대를 할 정도의 사람이니, 재산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부자로 추정된다. 십자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이다.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거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관망의 자세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이 순간에 가장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훌륭하고 인품도 좋은 사람. 그는 삶을 충실하게 살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자신의 무덤에 모셔도 대사제나 원로들이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빌라도에게 곤란할 수 있었던 부탁을 할 정도로 사회적 힘도 지위도 덕망도 갖추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돈 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그렇게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은 사람이었기에 이 순간이 가능했다. 이제 예수님은 죽으셨고 죽고 나서도 또 이렇게 사람에게 넘겨지셨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다가 네 복음서 모두에서 이 마지막 장면에만 등장한다. 이름도 정확하게 기록되었다. 예수님의 탄생 때 느닷없이 요셉 성인에게 맡겨지셨던 것처럼(그도 의로운 사람이었다.), 죽고 나서도 느닷없이 요셉이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장례가 맡겨진다. 예수님의 몸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싸는 행위도 새로 태어나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자기가 죽을 자리에 예수님을 모셨다. 사람이 죽어서 묻혀야 할 자리에 생명이 자리하셨다. 아기 예수와 함께 했던 요셉이 성경에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이 요셉도 장례가 끝난 후 성경에서 자취를 감춘다.
새 무덤이었다. 당시 풍속처럼 이미 사람이 묻힌 적이 있는 무덤에 묻히신 것이 아니라 새 무덤에 처음으로 모셔진 것이다. 낡은 무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썩을 자리가 아니라 부활할 자리는 새 무덤이어야 했다. 이는 예수님 이후의 사람들은 이전의 사람들이 죽어서 가던 곳에는 더 이상 가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빛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계속 넘겨지다가 더 이상 넘길 수 없는 곳까지 가신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원했던 결말이었고 여기까지가 사람들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시선까지 차단된 그곳(돌로 막혀 있음)에 두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여인들은 보이지 않는 분을 향해, 모두가 돌아가 버리고 아무도 없는 그 곳, 성모님도 제자도 없는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 가려진 예수님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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