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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27,45-56 십자가 아래의 여인들 본문
“엘리 엘리 레마 사박나티?”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그 시간에 하느님의 현존 속에 계셨다. 이 절규는 성부와의 완전한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삼위일체가 무너지는 순간. 생명 자체이신 분이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는 성자만이 아니라 성부 성령 모두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을 들은 사람들은 갈팡질팡한다. 여태 민첩하게 일관된 행동을 보이던 사람들이 혼돈에 빠져 이러자고도 하고 저러자고도 한다. 악의 세계는 혼돈이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지성소를 가린 휘장이 찢어지고, 하느님의 현존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난다.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된다. 예수는 죽으심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모든 사람들 앞에 내놓으셨다. 대사제만 들어갈 수 있었던 그 휘장이 찢어져 그 어떤 인간적 조건도 하느님의 현존을 막아서지 못하게 되었다. 더불어 예언자들이 예언했던 종말의 모습이다.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이사 26,19)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에제 37,12)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다니 12,2)
이제 예수님 십자가 아래를 봐야할 시간이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하고 말했다. 죽음을 목격한 이방인의 고백이다. 그리고 많은 여인들.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 끝까지 함께 한 이들이 십자가 아래를 지켰다. 하나만 보고 ‘끝까지’ 따라간 충실한 사람들. 소리 없이, 드러나지 않게 예수님을 따랐기에 그 수많은 기적의 장면에선 언급되지 않지만 모두가 떠나간 십자가 아래에서 이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사건이 벌어지는 중요한 곳에만 있지 않았다. 섣불리 덤비지도 않았고, 쉽사리 떠나지도 않았고, 훈수를 두지도 않았고, 앞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따랐고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십자가에 달린 마지막 모습마저도 지켜보고 있었고 이 여인들에 의해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끝까지 보았기에 새로운 시작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끊임없이 예수를 바라보았다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는 이 장면 어디쯤에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까. 부디 수난의 장면 저 끄트머리에라도 서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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