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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루카의 우물/루카 19장 (8)
깊이에의 강요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루카 19,21) 오늘은 14절(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에 걸려서 묵상이 잘 넘어가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단히 미워하는 것이 오늘따라 견디기 어려웠던 것. 내가 다 속이 상해서 감정만 끓이다가 좀 가라앉고 나니 곧 애초 그 종의 마음 그릇이 그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을 품삯이 아닌, 주인으로부터 거저 받은 돈을 쥐고서도 ‘거저 주시는 분’의 혜량은 깨닫지 못하는 정도의 그릇 말이다. 열매 맺은 나무가 영글은 열매를 내놓지 않으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6) 상대를 속여 가며 물건을 파는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을, 자기 자신마저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행위들이 성전을 성전이지 못하게, 성전을 '기도의 집'이 될 수 없도록 만든다. 나의 게으름, 부주의, 무관심, 이기심, 미움, 조급함... 오늘은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내 마음속에 온갖 언어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괴로워 성체 앞에 앉았는데, 소란하기만 하고 좀체 가라앉지 않던 것들이 겨우 잠잠해지고 나니 그제야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곳을......’ 예수님 목소리 덕에 내가..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루카 19,3-4) 예수님을 보려고 애썼던 자캐오. 나는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보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가. 그저 보여주시는 만큼만 보면서, 힘닿는 데까지 살아보는 게 아니라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예수님을 보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은 ‘애썼지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서 자꾸만 박힌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 몸 건사하는 데에 힘을 쏟고 예수님을 찾는 데엔 힘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나. 그래, 왜 아니었겠나. 자캐오가 나오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 나는 ‘내려옴’에 마음이 갔었다. 보기 위해 올라섰지만 결국 ‘내려와야만’ 만날 수..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 19,48) 사람들이 예수를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말씀을 듣느라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방도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말씀을 듣느라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는 것, 말씀 수행. 예수님 말씀을 새기고 따르며 살 때, 나뿐 만이 아니라 타인도 쉽게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내 키가 작고, 군중에 가려서 그분을 볼 수 없을 때 그분이 나를 보신다. 나는 어떻게든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가까이 부르시며(내려오너라) 내 집에 머무르겠다 하신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5절) 키가 작아 군중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뵙기 위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캐오를 보시자마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뵙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던(4절)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다시 내려와야 했습니다.(6절) 우리는 흔히 성덕을 '쌓는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늘에 쌓은 성덕이라면 세상에서는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겠지요. 성덕이 드러나는 방법은 겸손을 통해서, 즉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성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높이 오르는 길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하늘에 닿..
오늘은 도성을 보고 울고 계시는 예수님을 계속 생각한다. 무너지는 도성과 울부짖는 사람들을 미리 보시고, 사람들이 울부짖기 전부터 마음이 부서졌던 예수님의 마음. 나의 지난 시간에는 울 줄도 모르고, 울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며칠 전 본원에 갔을 때 수녀원 복도에서 한 수녀님을 만났는데, 반갑다고 팔짱도 끼시고 인사하면서 손도 잡으셔서 그 상태로 얘기를 나누며 긴 복도를 다 걸어갔다. 근데 팔짱을 낄 때 반대편을 끼시고 그러다보니 손도 어긋나게 잡으셔서 나는 거의 옆으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 길을 걸었는데,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전해져 오는 수녀님의 따뜻한 마음과 반가움으로 불편함을 견디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애써 눈을 맞추며 주고 받은 눈빛에선 못다한 말과 미처 다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