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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요한 13장 (10)
깊이에의 강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dailyreading 베드로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실제로 모른다고 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실패를 겪고 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알았지만 내치지 않고 기다리고 품으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요한 13,16) 이 구절이 마치 ‘너는 결코 나보다 높아질 수 없다’는 말로 들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줘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높이고 스스로 낮아져야 할 때, 섬김을 받기보다 섬겨야 할 때, 모범을 보이신 스승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스승의 마음으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줄 수 있다는 걸, 발을 씻어주신 스승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벗이라 부르신다는 걸 기억하도록... 간혹 내 일이 나를 낮춘다 싶어 자존심이 상할 때, 내 발을 씻으셨어도 예수님은 예수님이셨음을 기억하자. 지금의 나를 위해 잡히..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dailyreading 끝까지 사랑하셨다… 나는 어디까지를 끝이라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끝은 ‘없는데’ 나는 자꾸 끝을 생각한다, ‘있는’ 것처럼. 자꾸 끝을 생각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처럼.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3,36) 이 장면을 묵상하면 종종 베드로의 호언장담이 마음에 걸렸었다. 목숨까지 내놓겠다 했지만 얼마 못 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배신할 베드로 때문이 아니라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하고 제자리로 되돌아가고야 마는 ‘나’ 때문이다. 나는 또 나에게 걸려 넘어졌다. 이 사순절 동안 또 나는 ‘마음 먹고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복음을 다시 읽다가, 36절에서 멈췄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베드로의 호언장담도, 세 번..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6-17) 오늘 묵상 시간에는 ‘높지 않다’라는 말에 머물렀다, 높지 않다 해서 우리를 낮게 보시지도 않는 분과 함께. 발을 씻어주시는 주인과 살면서도 종들끼리 서로 높낮이를 따지다가 불행에 빠지는 게 인간들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어쩌면 나조차도 ‘남이 알아주는 높은 자리’에 묶여서 살아간다. 높지 않으니 낮다고 여기며, 높아지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는 것처럼. 요즘은 라일락과 불두화, 서양산사나무 사이에 주차를 한다. 향이 거의 없는 불두화도 향도 크기도 작은 서양산사도 향이 짙은 라일락도 나란히 서서 꿋꿋이 제 삶을 산다. 바람 잘 날 없는 본당에서 투닥거리다가 수녀원..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한 13,14-15) 나만 해야하는 일도 아니고 너만 해서도 안 되는 일임을 마음에 새긴다. 서로가 애써야 하고,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 우리가 서로 해야하는 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이 말씀이 이루어져도 끝까지 나를 사랑하실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기. 끊이 없이 그분께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분 품에 온전히 안길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를 기억하자. 아들이 알아보기도 전에 먼저 알아보신 아버지가 달려와 아들을 품었던 그때, 아들은 자신의 죄보다 ‘죄를 지었어도 아버지께 가야함’을 더 생각했다. 내가 그분을 모른척하는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내가 그분 품에 안기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야겠다, 그분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