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렉시오 디비나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장신부의 바깥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그린비출판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영어번역 사이트 케이제이트랜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목록요한의 우물 (117)
깊이에의 강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언젠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한(사실 종종 생각한다)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렇다면 나는 길도 진리도 생명도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나 스스로는 그 어떤 경지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하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있다, 없다는 짧고도 명확한 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내 안에서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쓸 때마다 내가 도달한 곳은 ‘나 자신’이었다. 매번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나를 벗어나지도, 다른 곳에 다다를 수도 없었다. 나를 찾으려 애쓸수록 내가 얻는 것은 그저 나 하나일 뿐(이마저도 내가 되고자 ..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46)그분을 믿는 사람은 어둠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매순간 의탁하고 노력한다는 말.빛이신 그분께 매일 돌아서고 다가서서, 매일 내 안의 어둠에서 벗어나고 내 곁의 어둠에서 멀어진다는 말.오늘도 말씀 안에서 기도의 방향을 배운다. 유혹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는 것처럼,어둠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어둠 속에 머무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dailyreading 베드로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실제로 모른다고 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실패를 겪고 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알았지만 내치지 않고 기다리고 품으셨다.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하시며(이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영광’은 십자가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몇 번이나 당신의 때를 언급하셨고 마침내 그 때가 왔음을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12,23)는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늘 미래형을 사용하셨는데 여기서는 완료형을 사용하셨습니다. 앞으로 올 사건이 아니라 그 시간이 이미 온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사건이 분명히 이뤄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14-15)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네, 다들 아시다시피 곧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들어 올려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ὑψωθῶ(휩소토)라는 단어는 ‘고양되어지다’ 또는 ‘영광을 입다’는 의미입니다. 즉 십자가를 수치와 비참으로 보지 않고 영광의 자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 안에서 영광을 발견하실 수 있나요? 고통 안에서 구원을 발견하실 수 있나요?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있을 잔치 준비로 모두 바쁘고 피곤한 ..
나해 사순 제3주일에 듣게 되는 복음말씀은 "성전 정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 사건이 일어났나요?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지난주 복음에서 우린, 남을 변화시킬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우리들의 변모를 이끌기 위함이었지요. 2000년 전엔 이 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이 복음을 듣는 우리에게는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같은 말씀일 겁니다, 다만... 그 성전은 이제 우리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오늘은 복음의 한 장면 안에서 변화하는 예수님의 호칭을 좀 살펴보며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 두 사람에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들을 본 예수님께서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니,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되물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에서 ‘라삐’로의 첫 변화입니다. 체험이 있고 나면 우리는 사물을 다르게 볼 줄 아는 또 다른 시선을 얻게 됩니다. 믿는 이들은 체험을 중심으로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달라지곤 하는데요, 예수님에 대한 호칭의 변화는 곧 인간의 영적 성숙이며 그 영적 성숙은 우리 이름의 변화, 존재의 변화(시몬→베드로)를 가져옵니다. 요한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 다른 누구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도 넘어선, 토마스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순간. 토마스가 비로소 부활을 만나는 순간. 죽음의 상처까지도 모두 보여줄테니 만져보고서라도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시는 예수님. 떠나고 의심했던 과거가 있더라도 괜찮으니 주저하지 말고 오라는 예수님. 그림을 보고 나니 상처를 보여주시는 예수님이, 부디 다 떨쳐내고 다시 당신께 오라는 예수님이 얼마나 따뜻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그 따뜻함에 의심했던 토마스가 얼마나 마음을 놓을 수 있었을지도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