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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19)
깊이에의 강요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기생(寄生)’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생하다’는 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다.’는 뜻이지요. 기생이나 기생충에 대한 아주 편협한 지식만 가지고 있던 제게 이 책은 어마어마한 세상을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기생충은 숙주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경우, 기생충과 숙주는 진화를 거듭해가면서 서로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생하는 생물 중 따개비는 게의 다리 부분에 붙어서 몸속으로 침투하여 그 안에서 살아가며 숙주인 게의 성별까지 바꿔가면서 몸 안에 알을 낳고 살아갑니다. 따개비가 일단 몸에 들어와 기생하기 시작한 게는 그때부터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가..
성경에는 군중이 많이 나오지만 진짜 예수님을 만난 건 개별적인 '자기 자신'일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간 '손이 오그라든 사람 한 사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을 때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 한 사람', 수많은 사람이 밀쳐댔지만 정확히 옷자락을 붙잡았고 군중 틈에서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에 나선 '하혈하는 여인 한 사람'이 치유를 받습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여도, 물 위를 걸어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다가가 안심을 시켜도 믿음의 담보로 기어이 표징을 요구했고, 생명을 준다고 하니 덜컥 탐이 ..
이번 주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사화인데. 특별히 제자들의 '동문서답'을 살펴볼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안드레아는 "여기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합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은 제자는 없습니다. 그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가진 것의 빈약함에 절망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물으시는 말을 듣기는 해도 내 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동문서답을 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이..
그리스도교의 성경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가 네 가지 있다고 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을 에로스, 가족간의 사랑을 스톨게, 우정이나 사회적 사랑을 필리아,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이 중 아가페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구약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 문화권에도 발견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개념입니다. 에로스는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스스로 충족되지 못하고 결핍되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즉 필요와 욕망, 결핍과 갈망의 사랑인 에로스는 스스로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욕구입니다. 이런 이유로 타락한 신화적 편견이나 오해 없이 신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성경 저자들은 '아가페'라는 말을 선택하여 쓰게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아가페 사랑은 일차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가페 자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언젠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한(사실 종종 생각한다)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렇다면 나는 길도 진리도 생명도 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나 스스로는 그 어떤 경지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하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있다, 없다는 짧고도 명확한 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내 안에서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쓸 때마다 내가 도달한 곳은 ‘나 자신’이었다. 매번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나를 벗어나지도, 다른 곳에 다다를 수도 없었다. 나를 찾으려 애쓸수록 내가 얻는 것은 그저 나 하나일 뿐(이마저도 내가 되고자 하..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46)그분을 믿는 사람은 어둠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매순간 의탁하고 노력한다는 말.빛이신 그분께 매일 돌아서고 다가서서, 매일 내 안의 어둠에서 벗어나고 내 곁의 어둠에서 멀어진다는 말.오늘도 말씀 안에서 기도의 방향을 배운다. 유혹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는 것처럼,어둠을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고 어둠 속에 머무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dailyreading 베드로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실제로 모른다고 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실패를 겪고 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알았지만 내치지 않고 기다리고 품으셨다.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하시며(이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영광’은 십자가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몇 번이나 당신의 때를 언급하셨고 마침내 그 때가 왔음을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12,23)는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늘 미래형을 사용하셨는데 여기서는 완료형을 사용하셨습니다. 앞으로 올 사건이 아니라 그 시간이 이미 온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사건이 분명히 이뤄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