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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 (118)
깊이에의 강요
팔레스티나 목자들은 낮동안에는 양들을 풀어놓아 풀을 뜯게 하다가 밤이 되면 임시로 마련한 우리에 들여보냈다고 합니다. 양들이 우리에 들어가려면 먼저 문을 통과해야 했고 목자들은 문앞에서 밤을 새며 지켰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양들의 문이라 한 것은 당신이라는 문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온 양들은 모두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양우리는 대부분 공동 우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자기 목자와 다른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할 줄 알고 자기 목자가 이름을 부르면 자신의 목자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들과 달리 다른 음성을 듣고 따라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일까요?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음성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7) #dailyreading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함께 걸어가면 그리 힘들지도, 크게 잘못 들어설 일도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어떻게 걸어가도 물리치지 않으실 분인데, 혼자서 가려다 지쳐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게 되는 건 아닌가도 싶었고. 본원 모임을 다녀왔다. 월요일은 늘 지친 상태라 모임을 가도 가만히 있고 싶고, 만사에 시큰둥하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 수녀님들이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했지만 굳이 그 자리에 가고 싶진 않았다. 나는 좀 더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모임 중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보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요한 6,11) #dailyreading 오병이어 기적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었다. 내가 지닌 것이 적다는 변명 혹은 절망,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에 대한 믿음, 넘치도록 남은 조각들을 모은 광주리를 보며 품는 희망에 묻혀 정작 기도를 잊으면 안 될 일.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십 년이 조금 넘은 지금에서야 ‘기도’를 조금 알겠다 싶다. 내 삶에서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렇게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알아간다. 거시적 안목이라 스스로 착각하며 거창한 기도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고, 애써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나 깨달음을 얻기를 청하며 개인 성화에만 집중하던 때도 있었고, 기도의 약함(하느님의 침묵)..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요한 21,7) #dailyreading 이미 한 번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 외쳐보았던 베드로가 다시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던 그가 이번에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오히려 겉옷을 두르고 뛰어들었다. 이는 믿음이 한 일이다.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내신 분, 배반한 자신을 믿고 용서하신 분의 믿음이 한 일이다. 그분이 의심을 품고(마태 14,31) 맹세까지 하면서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했던(마태 26,74) 베드로를 믿으셨기에, 그분의 믿음이 이제 베드로의 믿음이 되었다.
이번 주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a)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 두려움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종종 문을 잠가 놓고 삽니다. 닫는 정도가 아니라 잠가 놓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다가와 문을 여는 노력조차 아무 소용이 없도록 그렇게 문을 꽁꽁 잠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19절b)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문을 잠갔는데도 들어오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사..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dailyreading 끝까지 사랑하셨다… 나는 어디까지를 끝이라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끝은 ‘없는데’ 나는 자꾸 끝을 생각한다, ‘있는’ 것처럼. 자꾸 끝을 생각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처럼.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3,36) 이 장면을 묵상하면 종종 베드로의 호언장담이 마음에 걸렸었다. 목숨까지 내놓겠다 했지만 얼마 못 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배신할 베드로 때문이 아니라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하고 제자리로 되돌아가고야 마는 ‘나’ 때문이다. 나는 또 나에게 걸려 넘어졌다. 이 사순절 동안 또 나는 ‘마음 먹고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복음을 다시 읽다가, 36절에서 멈췄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베드로의 호언장담도, 세 번..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요한 12,3) 가끔, 나만 엎드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다들 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간에서 나만 바닥에 엎드려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을 해도 서럽고 쓸쓸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것이 향유 한 리트라 치의 봉헌이었음을, 단순히 바닥에 엎드린 것이 아니라 그분 발에 향유를 붓고 닦기 위한 자세였음을, 나만 엎드린 것이 아님을(예수님께서도 곧 나를 위해 바닥에 엎드리실 것이요(내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요한 13장), 내가 기꺼이 엎드려 그 일을 했을 때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