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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11장 (11)
깊이에의 강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이 복음에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던가 짐을 없애주겠다는 말씀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아침 묵상시간에 어김없이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애써 찾은 희망 대신 다른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생하며 - 온유 - 멍에를 메고 - 내 멍에는 편하다 무거운 짐을 진 - 겸손 - 나에게 배워라 - 내 짐은 가볍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투명한 화살표로 이어진 것 같았던 단어들을 연결해 보았고 내가 걸어야 할 희망은 이것이려니 했다. 네가 비록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거칠고 강렬한 감정을 ..
이번 주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각 부분마다 의지에 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25-26절은 예수님의 기도이지만 하느님의 의지(영역: gracious will)를 떠올렸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지만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 스스로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깨닫기 어렵지만 철부지νηπίοις[nēpiois, 네피오이스]는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 덕분에,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의지 때문에 오히려 잘 받아들입니다. 네피오이스는 실제로 어린 아이가 아니라 '경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의 제자들' 혹은 '순박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렵고 힘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옳고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묵상하다 보면 말씀 중에서 잘 걸려 넘어지게 되는 구절이다. 쉽게 들뜨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냉정하고 무심해서일 때가 많았던 걸 알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도 그랬다. 말씀은 내게 휘몰아치는데 정작 나는 무심하거나 모른척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무정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멈추신 적이 없다. 오늘 따라 이 구절이 참 아프다. 피리를 불며 춤추라 강요하진 않되 누군가 피리를 불면 적어도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 곡을 하며 눈물을 요구하진 않되 누군가의 곡에 잠시 멈춰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엇보다 그분이 추시는 춤사위가, 그분이 부르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 11,11) #dailyreading 며칠 전 올겨울 처음으로 아침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날의 사진이다. 날이 추워지니 시동이 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야 공기가 데워지고 핸들도 너무 차가워 아침 출근이 그리 달갑지 않았었는데, 그날 앞유리에 와이퍼 자국을 따라 피어난 성에꽃을 보는 순간 생각을 달리 먹어야겠구나 하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늘 보던 하늘, 잎을 다 떨구고 난 느티나무, 불마저 꺼진 키작은 가로등, 피정집의 뒷모습, 허름한 스타렉스 앞유리창, 그리고 성에... 평소의 내게는 사실 별스러울 것 없었던 각각의 존재가 서..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1,14-25) 요한에게서 엘리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요한은 엘리야 예언자다. 예수도 예수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그 사람이 예수임을 알아보는 건 나의 몫이다.
가해 대림 제3주일 마태 11,2-11 요한이 예수님 소식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는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을 했습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맞다, 아니다'하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에게 가서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이천 년 전 예수님의 말씀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도 느낄 수 있는 예수님, 오가는 일이 불편한..
친구들 안녕하세요? 한 주간 동안 잘 지냈나요? 친구들, 제대 위에 뭔가가 달라졌지요? 오늘은 불켜진 초가 세 개인데, 분홍색 초가 하나 더 켜졌어요. 네 개의 초에 불이 다 켜지면 곧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실 거예요. 주일마다 촛불을 하나씩 더 켜는 것은 죄로 인해 캄캄해진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구원하러 다가오심을 나타내는 거예요. 보라색 초가 켜지는 동안 우리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기도와 선행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준비를 했어요. 셋째 초가 켜지는 오늘은, 이제 곧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기뻐하면서 기쁨을 상징하는 장미색 초에 불을 켰어요. 지난 주 우리 친구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판공성사도 봤지요? 그러니 더욱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지요. 이천 년 전 베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