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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마태오 7장 (8)
깊이에의 강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마태 7,24-25) 우리는 하느님을 따르며 살아갈 때조차 더 이상 내 삶에 비가 내리지 않길, 강물이 밀려오지 않길, 바람이 불어 들이치지 않길 원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내게 주신 삶에는 수시로 비가 내리고, 때론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내 집에 들이친다. 우리의 삶은 비도 강물도 바람도 없는 삶이 아니라 비와 강물, 바람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반석 위에 지어진 집이라 무너지지 않는 삶이다. 아픔도 시련도 없는 삶이 아니라 거듭되는 우여곡절을 겪어도 그분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삶. 무너지지 않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7-8) 이 삶을 살면 살수록 참 어려운 말씀 중 하나이다. 살아보니 무엇을 청했는지, 내가 진짜 찾는 게 무엇인지, 어느 문 앞에 서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고 그때마다 이 구절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정말 받으면 어쩌나, 정말 주시면 어쩌나, 이 문 앞까지 오긴 왔는데 정말로 문이 열려 발을 들여 놓아야 하면 어쩌나... 그래서 정말 필요한 건 하나, 믿음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다시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에서 시작해야겠지.
살다보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 싶은데, 왜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내 깊은 데까지 들이치는가, 무너질 정도로 내 삶을 흔드는 일들이 생기는가 질문하게 된다. 탓할 만한 잘못이 내게 있었다면 답하기가 쉽지만, 스스로 성실히 걸었다 싶을 땐 쉬이 답이 찾아지지 않아 기도조차 어려워진다. 때가 되어 내리는 비에, 강물이 넘쳐 밀려오는 일에, 스스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얼마나 이유를 찾으려 했던가. 비 오고 바람 부는 일에서 조차 나는 왜 이리도 선악시비를 가리려 드는가. 내 안에서 선악시비를 가리는 일이 두려워서는 아닌가. 튼튼한 집을 지으라 하시기 보다 반석 위에 지으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본다. 분명 '내가' 튼튼하게, 열심히 집을 지었는데 왜 강물이 밀려들고 바람이 불어와서 나는 흔들리고 무너졌는..
하루종일 복음을 곱씹었지만 묵상은 진척이 없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성당에 앉아 읽고 또 읽고 눈감고 묵상하려 했지만 도무지 아래로 내려가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실마리가 잡히는 듯 하다가도 이내 흔적도 없고 그저 텅 빈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기도가 이렇게 힘들다. 사실 마음이 힘든거지. 마지막이다 싶어 내 방 책상에 앉아 또 성경을 펼쳤다. 촛불을 켜고 앉아 되든 안되든 삼십분은 버텨보겠다는 악다구니. 이제 성경을 덮으려는 찰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듯 하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왜 이리들이 양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겉과 속. 보이는 모습과 실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굳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이리의 모습으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걸 아는 자만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이리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양의 옷차림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나쁜 나무는 왜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건가... 이런 질문이 꼬리를 잇는 걸 보면 요새 내가 불만이 많은가 보다.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 7,13) 묵상 중에 좁은 문을 상상해 봤다. 멸망으로 이끈다는 넓은 문과 널찍한 길도 상상해 봤다. 그러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보스톤으로 떠났던 피정 마지막 날, 엘에이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곳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머물던 호수였다. 그가 낚시를 했다던 호수와 그가 살던 집을 돌아보며 걷던 그날 오후. 우리는 생각보다 넓은 호수와 숲(기차길도 지나갈만큼 큰 숲이었다)에 놀랐고 생각보다 더 좁은 방에 또 한번 놀랐었다. 하지만 그 넓은 숲길을 함께 걷다보니 가끔은 어깨가 부딪히기도 했고 나지막한 혼잣말도 서로 들을 수 있었다. 둘셋 따로 걸었다면 널찍한 길이었겠지만, 다섯이 굳이 함께 걸으려다보니 오히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