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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7,15-20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7장

마태 7,15-20

하나 뿐인 마음 2016. 6. 23. 08:53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왜 이리들이 양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겉과 속. 보이는 모습과 실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굳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이리의 모습으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걸 아는 자만이 양의 옷차림을 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이리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양의 옷차림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나쁜 나무는 왜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건가... 이런 질문이 꼬리를 잇는 걸 보면 요새 내가 불만이 많은가 보다.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에 현혹되지 말고, 그 모습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행동을 하는지 즉 열매를 보라는 말씀이라는 거 안다. 나아가 남을 볼 때 그리하는데 그치지 말고 나 자신이 그러한지를 살피라는 뜻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말씀이 불편했다. 


이 꽃은 시계초라고도 불리는데 passion flower라고도 한단다. 얼마 전 수목원에 갔을 때 처음 본 꽃인데 프랑스 사시는 트친이 올리신 꽃사진을 보고 뭔가 싶어 물어봤더니 예수님을 상징하는 passiflore라고 불린단다, 프랑스에서는. 꽃잎은 창을, 5개의 꽃밥은 창자국을, 덩굴손은 채찍을, 자방주는 십자가를, 화주는 3개의 못을 상징한다고 해서 '수난의 꽃'이라 불린다는데 나는 이런 것들도 사실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저 예쁘다 정도로만 생각해도 될 일을 굳이 일일이 의미를 붙여가며 예수를,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고 의미를 규정할 필요가 있을까. 꽃이든 뭐든 심지어 초심지까지도 굳이 예수의 이미지를 대입해서 끼워맞추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유별난 일부 사람들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실은 그것이 기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거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불편해하는 나 자신 때문에 더 불편해진다. 


꽃에 관한 기사와 블로그 몇 개를 봤더니 시계초의 효능이 더 눈에 들어온다. 불면증, 진정제, 혈압과 경련, 통증에도 좋다고 하니 단순히 이 꽃의 이미지를 예수와 결부시킨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아무리 가시관과 못자국 등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해도 맹독을 품고 있는 꽃을 쉽게 '수난의 꽃'이라 부르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편히 잠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사람에게,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도움을 주는 꽃이었기에 결국 예수의 이미지를 연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성마른 내가 투덜거렸구나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다시 복음을 읽으니 나쁜 나무는 절대 좋을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읽히지 않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 결코 나쁜 나무일 리가 없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열매로 나무가 결정 되듯 내가 한 말을 행함으로써, 내가 입을 옷에 걸맞게 살아감으로써 내 존재가 완성되어 가는 거라는 예수님의 조용한 가르침이 들린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니 꽃이란 거 참 오묘하고 신기하고 아름답다 싶긴 하다. 좋은 점이 많은 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이 웃음 짓게 되는 것 역시 그 꽃을 보고 식물 자체를 좋은 것으로 가늠하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꽃 하나를 가지고서라도 날 깨우쳐보시려는 예수님이 참,,,바쁘시겠다.



이건 천리포 수목원에서 시계초를 처음 본 날에 찍은 것. 멀리 있어서 살짝 찍어 확대를 했더니 좀 흐릿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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