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렉시오 디비나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장신부의 바깥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그린비출판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영어번역 사이트 케이제이트랜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목록요한의 우물/요한 6장 (14)
깊이에의 강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7) #dailyreading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함께 걸어가면 그리 힘들지도, 크게 잘못 들어설 일도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어떻게 걸어가도 물리치지 않으실 분인데, 혼자서 가려다 지쳐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게 되는 건 아닌가도 싶었고. 본원 모임을 다녀왔다. 월요일은 늘 지친 상태라 모임을 가도 가만히 있고 싶고, 만사에 시큰둥하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 수녀님들이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했지만 굳이 그 자리에 가고 싶진 않았다. 나는 좀 더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모임 중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보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요한 6,11) #dailyreading 오병이어 기적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었다. 내가 지닌 것이 적다는 변명 혹은 절망,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에 대한 믿음, 넘치도록 남은 조각들을 모은 광주리를 보며 품는 희망에 묻혀 정작 기도를 잊으면 안 될 일.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십 년이 조금 넘은 지금에서야 ‘기도’를 조금 알겠다 싶다. 내 삶에서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렇게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알아간다. 거시적 안목이라 스스로 착각하며 거창한 기도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고, 애써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나 깨달음을 얻기를 청하며 개인 성화에만 집중하던 때도 있었고, 기도의 약함(하느님의 침묵)..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요한 6,68) #dailyreading 이렇게 무겁고 아픈 말이었나 싶은 요즘. 요며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냐시오와 연결된다. 그래, 질문이 아니라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겠냐는 스승의 질문에 대답한 베드로의 이 말의 무게를 짐작해 본다. 스승을 안심시키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다그치는 말이었을지도... 아프지만 나도 나의 형제 이냐시오도 종내 이 기도를 바쳐야 하겠지, 청원이 아니라 서원으로. 울지 않고 웃으며 기도할 수 있기를. 형제여, 그대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나도 기도할 수 있기를, 내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부디 나와 함께 기도해 주길...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요한 6,45)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나뭇가지가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리듯, 진실로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십자가로 나아간다. 자연스러운 일. 마땅하고 옳은 일.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요한 6,21) 어쩌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것보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이 더,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요한 6,5) 너희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빠지고 우리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너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냐는, 당신은 모른 척 우리만 해결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함께 해결하자고 하신다. 그래서 너희가 아니라 우리.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믿음의 담보로 표징을 요구한 군중. 생명을 준다니 덜컥 탐이 나서 그 빵을 늘 달라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 당신께 ‘오라’ 하시고 ‘믿으라’ 하신다. 당신께 가야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믿어야 목마르지 않다고 하신다. 난 배를 채우고자 하는가, 그분께 ‘다가가’ ‘믿으려’ 하는가.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이 구절은 또 얼마나 아픈가.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