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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요한 6장 (15)
깊이에의 강요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기생(寄生)’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생하다’는 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다.’는 뜻이지요. 기생이나 기생충에 대한 아주 편협한 지식만 가지고 있던 제게 이 책은 어마어마한 세상을 열어 보여 주었습니다. 기생충은 숙주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경우, 기생충과 숙주는 진화를 거듭해가면서 서로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생하는 생물 중 따개비는 게의 다리 부분에 붙어서 몸속으로 침투하여 그 안에서 살아가며 숙주인 게의 성별까지 바꿔가면서 몸 안에 알을 낳고 살아갑니다. 따개비가 일단 몸에 들어와 기생하기 시작한 게는 그때부터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가..
성경에는 군중이 많이 나오지만 진짜 예수님을 만난 건 개별적인 '자기 자신'일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간 '손이 오그라든 사람 한 사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을 때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 한 사람', 수많은 사람이 밀쳐댔지만 정확히 옷자락을 붙잡았고 군중 틈에서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에 나선 '하혈하는 여인 한 사람'이 치유를 받습니다. 예수님 가까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 나오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여도, 물 위를 걸어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다가가 안심을 시켜도 믿음의 담보로 기어이 표징을 요구했고, 생명을 준다고 하니 덜컥 탐이 ..
이번 주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사화인데. 특별히 제자들의 '동문서답'을 살펴볼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필립보는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안드레아는 "여기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합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은 제자는 없습니다. 그저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가진 것의 빈약함에 절망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물으시는 말을 듣기는 해도 내 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동문서답을 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7) #dailyreading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함께 걸어가면 그리 힘들지도, 크게 잘못 들어설 일도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어떻게 걸어가도 물리치지 않으실 분인데, 혼자서 가려다 지쳐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게 되는 건 아닌가도 싶었고. 본원 모임을 다녀왔다. 월요일은 늘 지친 상태라 모임을 가도 가만히 있고 싶고, 만사에 시큰둥하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 수녀님들이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했지만 굳이 그 자리에 가고 싶진 않았다. 나는 좀 더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모임 중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보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요한 6,11) #dailyreading 오병이어 기적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었다. 내가 지닌 것이 적다는 변명 혹은 절망,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에 대한 믿음, 넘치도록 남은 조각들을 모은 광주리를 보며 품는 희망에 묻혀 정작 기도를 잊으면 안 될 일.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십 년이 조금 넘은 지금에서야 ‘기도’를 조금 알겠다 싶다. 내 삶에서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렇게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알아간다. 거시적 안목이라 스스로 착각하며 거창한 기도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고, 애써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나 깨달음을 얻기를 청하며 개인 성화에만 집중하던 때도 있었고, 기도의 약함(하느님의 침묵)..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요한 6,68) #dailyreading 이렇게 무겁고 아픈 말이었나 싶은 요즘. 요며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냐시오와 연결된다. 그래, 질문이 아니라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겠냐는 스승의 질문에 대답한 베드로의 이 말의 무게를 짐작해 본다. 스승을 안심시키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다그치는 말이었을지도... 아프지만 나도 나의 형제 이냐시오도 종내 이 기도를 바쳐야 하겠지, 청원이 아니라 서원으로. 울지 않고 웃으며 기도할 수 있기를. 형제여, 그대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나도 기도할 수 있기를, 내가 이 기도를 바칠 때 부디 나와 함께 기도해 주길...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요한 6,45)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나뭇가지가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리듯, 진실로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십자가로 나아간다. 자연스러운 일. 마땅하고 옳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