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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요한의 우물/요한 6장 (16)
깊이에의 강요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요한 6,21) 어쩌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것보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이 더,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요한 6,5) 너희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빠지고 우리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너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냐는, 당신은 모른 척 우리만 해결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함께 해결하자고 하신다. 그래서 너희가 아니라 우리.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믿음의 담보로 표징을 요구한 군중. 생명을 준다니 덜컥 탐이 나서 그 빵을 늘 달라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 당신께 ‘오라’ 하시고 ‘믿으라’ 하신다. 당신께 가야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믿어야 목마르지 않다고 하신다. 난 배를 채우고자 하는가, 그분께 ‘다가가’ ‘믿으려’ 하는가.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이 구절은 또 얼마나 아픈가.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6,36)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dailyreading 하지만 베드로는 떠났었다. 머무는 것과 떠나지 않는 것은 다른 말. 떠나보았기에 떠나지 않으려 애쓸 수 있다. 떠나기 위해 돌아서 본 사람만이 되돌아가기 위해 돌아서는 것의 의미를 안다. 떠나본 적이 있는 사람만의 힘이 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듣기에 거슬려 투덜거리며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하며 계속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사람을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힘으로 머물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떠나갔습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형틀이나 고통 속에 죽으신 예수..
✙ 연중 18주일 요한 6,24-35 며칠 전 어떤 흑인 한분이 오셔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후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은 아벨을 죽인 후 어디로 갔냐는 겁니다. 성경에 관한 질문인가 싶어 대답을 하다 보니 그분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했고, 그분은 “나는 알고 있다”고 했지요. 엉뚱한 성경 논쟁이 목적이었나 봅니다. 결국 저는 “나는 그곳이 어딘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겐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 예수님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마무리를 했지요. 그분에겐 성경을..
영어로 복음을 읽기 시작한 후로 새로운 단어들이 눈에 보인다. 물론 지금의 내 삶이 그 묵상 꺼리를 쏙쏙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recline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온다.'기대다' '눕다'라는 뜻이라는데 성경에는 '자리를 잡다'라고 번역되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recline을 명하시고,두번째, 사람들은 그 명에 따라 recline을 행했다. 이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recline하라는 명에 따른 이들이다. 이들이 오천 명쯤.세번째, 감사를 드린 빵과 물고기를 recline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기대다'라는 단어 덕에 제자 요한도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어쨌든 recline한 사람들은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