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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Tolle Lege (25)
깊이에의 강요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을 없애 버려야 너희가 잘될 것이다. (신명 19,13)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도 바리사이들처럼 나의 종교적 열심이 타인을 옭아매거나 판단, 단죄한다면 나는 하늘나라를 살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까지 함으로써 국익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정작 그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어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해야 하고 기계 부품처럼 다루어져서 함부로 취급된다면 그 기업은 과연 그 생산품처럼 훌륭한 기업일까.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켜야 할 규정도 많고 바쳐야 할 제물도 많다. 하지만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은 혼자만 열심히 함으로써 ..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러 들어가는 것은, 너희가 의롭거나 마음이 올곧아서가 아니다. (신명 9,5)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나는 오늘부로 둘째 수녀가 되었다. 마음이 더 넉넉해지거나 성덕이 더 깊어져서가 아니라 동생 수녀님이 새 식구로 와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높아짐(실은 둘째 수녀가 되었다고 해서 더 높아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굳이 표현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받쳐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엔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타인을 낮추는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남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자신이 고귀해진다고 착각하는 사람, 남에게 힘을 가해 억누름으로써 자신이 강하다고 과시하는 사람, 남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그 불행을 상..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신명 7,7) 예수님은 나를 왜 부르셨을까? 종신 서원을 앞둔 친구 전해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도 곧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묻고 또 물었었다. 개인적으로 성소의 이유를 물어오는 이들에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부르셔서'이지만, 부르셨다는 건 살면서 깨쳐온 바이고 더 원초적이고 이상적인 동기는 입회 몇년 전부터 기억에서 떠나지 않던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나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때문이다. 멋쩍은 표현은 늘 내게 어려운 숙제지만, 그래, 사랑하고 싶어서 이 삶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번번이 사랑에 실패하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자 한다. 사랑..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신명 4,7) 이런 찬양 노래가 있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당신을 알게 된 후로 얻어진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뒷부분보다 앞부분의 가사가 마음에 너무나 와닿아서 한동안 참 많이도 불렀던 찬양이다. 유아 세례를 받은 나이지만 내게도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 지도 모르는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하느님은 내게 너무나 좋으신 아버지이시지만, 때론 너무나 분명하고 때론 너무나 멀어 희미하게 느껴지는 하느님의 뜻은 나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고 위로와 아픔을 함께 주신다. 그분의 위로가 너무나 간절하여 청하고 청..
"누가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무엇이든 완전 봉헌물로 주님에게 바쳤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자기 소유의 밭이든, 그것을 팔거나 되살 수 없다. 완전 봉헌물은 모두 주님에게 바쳐진 가장 거룩한 것이다. 완전 봉헌물이 된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대속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레위 27,28-29) 레위기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바르고 고귀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알려주는 설명서 같은 책이다. 이 설명서는 서원 예물의 값에 관한 주제로 마무리 되는데, 완전 봉헌물을 언급하며 끝난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나 자신을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 구원의 값으로 나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나, 이 세상의 행복을 찰나..
너희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너희 곁에서 허덕이면, 너희는 그를 거들어 주어야 한다.(레위 25,35) 법전 같은 레위기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지침으로 명시되어 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렇게 당연한 것들을 왜 적어 놓았을까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다가도 금방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무시되거나 별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반대로 거짓과 불의가 당연시 되지 않는가. 어디 그 뿐인가. 사는 동안 나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상대에 따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험하게 되는가.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다를 때, 나의 기쁨과 너의 기쁨이 다를 때, 나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다를 때. 나란히 앉아 한 곳을 바라본다 해도 물..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구석까지 모조리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고 남은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그것들을 가난한 이와 이방인들 위하여 남겨 두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23,22) 자본주의는 기본 원리는 노동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다. 이 논리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하지만 하느님은 일하지 못하는 자(스스로 일을 할 수 없는 신체조건을 지닌 자 즉 부모가 없는 어린이, 노약자, 남편이 없는 과부, 병자 등)와 넉넉히 일하기엔 시간이나 다른 조건이 부족한 자(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거나 타인을 이익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이들)를 놓치지 않으신다. 능력 만큼 가져갈 수 있는 이들이 외면하기 쉬운 사람들을 위한 길을 반드시 열어 두신다. ..
이것은 속죄 제물이므로, 그 위에 기름을 치거나 유향을 얹어서는 안 된다. (레위 5,11) 가장 좋은 것들을 바쳐야 하는 여타 제물과 달리, 속죄 제물은 있는 그대로 바쳐야 하는 제물이다. 기름을 쳐서 윤기가 흐르거나 유향을 얹어 향기를 풍겨서는 안 된다. 보태어도 안 되고, 내 마음대로 따로 빼어 두어도 안 된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들고 가듯 그렇게 제물을 들고 가야 한다. 하느님 앞에 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가리고 싶어하는가.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가리기도 하고, 슬쩍 눈 감고 잊은 척 내 지난 과오를 가리기도 하지만 속죄 제물만큼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 앞에 가야 한다. 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 바친다. 봉헌 예물을 들고 제대 앞으로 나아갈 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