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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신명 7,7) #Tolle_Lege 본문

Tolle Lege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신명 7,7) #Tolle_Lege

하나 뿐인 마음 2017. 2. 16. 22:28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신명 7,7)


예수님은 나를 왜 부르셨을까? 종신 서원을 앞둔 친구 전해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도 곧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묻고 또 물었었다. 개인적으로 성소의 이유를 물어오는 이들에게 나의 대답은 언제나 '부르셔서'이지만, 부르셨다는 건 살면서 깨쳐온 바이고 더 원초적이고 이상적인 동기는 입회 몇년 전부터 기억에서 떠나지 않던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나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때문이다. 멋쩍은 표현은 늘 내게 어려운 숙제지만, 그래, 사랑하고 싶어서 이 삶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번번이 사랑에 실패하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자 한다. 사랑.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잣대로 재어보면 가감없이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죽을만치 아플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나에게 나 자신을, 내가 사는 세상을 '재어'보라고 재촉한다. 본 회퍼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부르시는 것은 와서 죽으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신명 7,7-8)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다만 '사랑'이었다. 사랑 때문에 부르셨다면, 응당 사랑으로 대답해야 하는 법. "나는 여기 왜 왔는가?" 나는 그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내 삶을 살아 왔다. "그리스도는 나를 왜 이곳으로, 이 삶으로 부르셨는가?" 본 회퍼는 결국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이유,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물론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나 자아의 죽음, 이기심의 포기 등을 포함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의 봉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작은 존재에 불과한 나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인 '죽음'을 내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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