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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완전 봉헌물이 된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대속할 수 없다. (레위 27,29) #Tolle_Lege 본문
"누가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무엇이든 완전 봉헌물로 주님에게 바쳤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자기 소유의 밭이든, 그것을 팔거나 되살 수 없다.
완전 봉헌물은 모두 주님에게 바쳐진 가장 거룩한 것이다.
완전 봉헌물이 된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대속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레위 27,28-29)
레위기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바르고 고귀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알려주는 설명서 같은 책이다. 이 설명서는 서원 예물의 값에 관한 주제로 마무리 되는데, 완전 봉헌물을 언급하며 끝난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나 자신을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 구원의 값으로 나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나, 이 세상의 행복을 찰나 같은 현생이나마 조금 더 누리기 위해 나 자신의 봉헌을 종내 미루면서 대신 예수를 정성되이? 봉헌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결국 마지막 순간 우리가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때가 바로 나 자신을 봉헌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다만 그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제물(나의 입장에서야 하나 밖에 없는 전부이니 가장 값진 것이라 하겠지만 하느님 편에서도 과연...)을 드리는 순간에 나의 제물이 너무 추레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대신 갚을 때가 많다. 물론 가족이나 그 누군가를 위해 바치는 희생도 넓은 의미의 대속(代贖)이지만 긍정적 의미가 아닌 때도 많다. 나중에 열심히 할테니 지금은 모른 척 넘어가는 일들이 주로 그렇다. 자녀들의 종교 활동, 나의 기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린 당장의 도움을 미루기도 한다. 매일의 은총을 청하면서도 매일의 기도는 수도 없이 미루어 왔다. 화해해야할 때도 삭이지 못한 분노를 끌어 안고 용서를 거부함으로써 평화마저 미뤄 버린다. 지금 견뎌야 하는 고통을 다음으로 미루기도 하고, 용기를 내어 타인의 편에 서야 하는 때를 미루어 비겁함 뒤로 숨기도 한다. 무엇보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고해성사를 얼마나 미루었던가.
하지만 이처럼 대신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반드시 온다. 지금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제대 앞에 나아가 예물을 바치지만 종내 그 제대 위에 바쳐질 제물이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오듯, '완전 봉헌물'이 되어야 할 순간이 온다. 완전 봉헌물이 되어야 하는 그 순간에, 나 자신 또한 너무 추례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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