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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하루하루 부르심따라 (156)
깊이에의 강요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마태 2,16) #dailyreading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목숨들을 수없이 죽여버리는 잔악무도한 권력자의 횡포… 안그래도 답답한 세상인데 뉴스를 본 후라 복음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무고한 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그때 우리는 가까스로 살아 남은 아기를 탓할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주춤할 수 있도록 내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이다. 이들을 기억하며 식사 후에 서둘러 올라와 내 빨래가 없는 공동 빨래를 개키고 다림질을 했다. 내 빨래가 없으니 나는 오늘 빨래를 널지 않아도, 개키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마음..
사실, 오르간이 좀 버거운 날에는 반주 없이 좀 노래하거나 미사곡을 말로 해도 큰일나는 건 아니지 않나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내가 모든 미사에 들어갈 순 없으니 다른 반주자가 못 오는데 내가 나가는 미사가 아닐 때나 피정이나 휴가로 며칠씩 자리를 비울 때 한두 번 정도는 반주가 없어도 되지 않나 했다. 피정 들어와 첫 주일미사에, 연로하신 수녀님들이 대부분인데 오르간 음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 서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반주자 공백을 메웠고 피정 동안 음이 좀 맞지 않아도 주일과 대축일 미사를 창미사로 봉헌했다. 그리고 오늘 이 부분을 읽었다. "어느 날, 신암동에 있는 육군 제1병원 안달원 베드로 군종신부가 병원 성당의 주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해줄 수녀를 요청하러 공평..
오늘의 아침 산책. 멀리서 보니 보라색 꽃들이 흐드러져 있어 얼른 가보았더니 아스팔트 위에 핀(듯 보이는) 나팔꽃이 있었다. 설마 뿌리를 아스팔트 위에 내렸나 싶었는데, 가까이 보니 몸만 슬쩍 얹었을 뿐 뿌리는 저쪽 땅 속 깊이 튼튼하게 박혀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핀 저 나팔꽃이 온 맘으로 피고 질 수 있는 건 땅 속에 단단히 뿌리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간신히 피었다가 서둘러 말라버리지 않을 수 있는 건 뿌리를 제대로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삶도 그렇겠지. 지금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깊이깊이 뿌리내려야 온 맘으로 피고 지겠지. 영양분도 물도 지금 머무는 곳보다 내 뿌리이신 하느님으로부터 건져 올려야겠지. 그래야 피는 일도 지는 일도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이 되겠지. 아스팔트도 돌..
본래도 환희의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연피정 중이니 하루에 모든 신비를 다 바치게 되지만 어제 오늘은 책의 내용도 그렇고 우리 수도 공동체를 위해(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녀가족) 특별히 기도하고 있다. 오늘 밤산책에서는 어둑어둑한 피정집 주위를 맴돌며 특별히 환희의 신비를 더 집중해서 바쳤다. 1단 예수님을 잉태하심.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순리처럼 여겨지지 않는 잉태의 신비. 선악시비를 뛰어 넘는 당신의 섭리를 믿음의 귀로 알아 듣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마음 깊이 새길 줄 아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는 수도자가 되게 하소서. 2단 엘리사벳을 찾아보심. 시련의 때, 곤란의 때, 이해하기 어려운 뜻 앞에서, 더 깊은 믿음이 필요할 때 … 문을 잠그고 스스로를 가두..
서원한 후 본당 수녀만 했다. (지원자 시절, 우리 수도회는 본당 소임이 별로 없다는 말에 안도했던 사람이 나인데…) 심지어 지금은 종신서원을 하자마자 소임을 받아 3년을 꼬박 살았던 본당에 거의 10년 만에 다시 와서 소임 중이다. 본당 소임에다 작은 분원에 살면 소소한 일까지 나눠서 해야하니 각자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 나는 사실 오르간이 어렵다. 잘 치지도 못하지만, 그것보다는 성무일도 중에도 미사 중에도 늘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이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오롯한 집중’이 그립다는 말. 몸이 좀 안좋을 때나 마음에 고민이 있을 땐 더더욱 ’오롯한 집중‘이 소원이다. 그래서 피정을 오면 오롯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성무일도 시간에도 오로지 찬미를 바칠 수 있길..
피정 중이긴 하지만 주일과 대축일을 위해 성무일도 성가 연습을 함께 했다. 피정자 중에서 제일 젊은 나도 수녀원에서 24년째 살고 있고, 다들 40-50년은 기본이신 선배수녀님들이신데 수십 년을 불러온 노래를 또 연습한다는 말에 어느 누구도 불평을 않으셨다. 음이 좀 높고 까다로운 시편 후렴 연습도 끝나고, 문제는 제1저녁기도 찬미가. 갑자기 이곳 장상 수녀님께서 20일 찬미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26일 찬미가를 제1저녁기도에 부른다고 하신 것. 입회 후 나는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곡이었는데(반주자 수녀님도 모르는 곡이었다.) 의아함만으로 이의를 제기할 순 없는 노릇이라 눈치를 보며 연습을 했다. 연세가 많으신 수녀님들은 83년까지는 복자 축일을 지내셨으니(그래도 40년이 지났는데,,,) 희미한 기억으..
안식일이란 본디 하느님께 전적으로 바쳐진 날. 창조의 일곱째날을 기억하며 쉬는 것도 있지만 거룩하게 지내는 온전한 예배의 날이기도 하다. 수도자들에게는 하루 24시간 중에도 안식일에 해당하는 거룩한 쉼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하느님께 전적으로 바치는 시간 즉 성무일도가 바로 시간의 안식일이다. 성무일도는 수도자들의 시간의 성전이며 아무것도 침범하지 못하는 지성소여야 한다. 우리들의 성무일도는 하느님께 특별히 봉헌된 시간이요, 무엇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시간이며, 수도자들의 계약궤인 봉인된 수도 서원이 모셔진 시간이다.
피정을 하러 들어왔다. 만나고 싶었던 언니 수녀님을 만나 피정을 시작하기 전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고, 잠들기 전 아직은 낯선 성당에서 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무릇 하느님의 일이라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순리처럼 혹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입회를 결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척척 맞물려 돌아갔을 때가 그랬다. 거대한 미로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레일 위에 놓인 기차를 탄 기분이었달까. 그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경로대로 가는 기차가 하느님의 뜻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본디 신앙보다 더 큰 믿음으로 두려움이나 의심 없이 따라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어쩌면 그땐 유아기적 신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홍해 앞에 섰다면 홍해가 갈라지는 것, 내가 홍해를 건넜으면 적(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