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 고대그리스어(헬라어)학습
목록하루하루 부르심따라 (163)
깊이에의 강요

이모에게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이 왔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한 이모를 더 이상은 고통스럽게 오래 붙들어 둘 수는 없기에 연명 치료를 중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호흡기까지 뗄 수는 없어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호흡기를 달고 있어도 밤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이모는 맥박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생의 시간을 고통 속에서 이어가는 이모를 위해 호흡기를 떼어 드리고 편히 하느님 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반겨줄 곳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올라와 있다. 입회한 후 스무 번이 넘는 연피정을 하면서 이렇게 중간에 피정을 마친 것은 처음이었다. 시작을 했으면 제대로 마치는 것이 늘 당연하고 심지어 ‘옳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열흘 간의 연피정이 삼 일만에 끝맺음을 할 수도 있..

“자기가 믿음 안에 살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 (2코린 13,5) 연피정을 시작했다. ‘자격이 없는 나를 30년 동안이나 쓰셨다’며 피정 강의를 시작한 신부님. 첫미사 때 신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경험을 나누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아직도 내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 강의를 하루에 두 번이나 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저녁에도 뭔가가 있는 피정은 난생 처음이라 엄청난 스케줄에 처음부터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 마음이 조금 녹았다. 이대로 하느님 앞에 선 나를 들여다 본다. 저녁에 잠시 걷다가 본 홀씨가 떠올랐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결국 시들고 홀씨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토록 붙들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붙들며 살고 있나. 홀..

어느 날 내게 죽음이 다가오면, 너무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만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은 후 서서히 곡기를 끊고 내 생애 가장 간절하면서도 유쾌한 기도를 바치다가 조용히 세상과 이별하고 싶다.

오늘 하루는 단편소설 같았다. 수녀원을 떠나게 된 선배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붙잡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내며 흔들리던 때나 또다른 길에 들어설 때까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며칠 전부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며 보냈었다. 뒤숭숭 할수록 수녀원의 일상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 새벽미사를 마치고 공동기도를 바친 후 달걀 하나와 커피로 요기를 하고 수녀원을 나섰다. 해가 떴는데도 바람이 차다 싶었던 길. 기차역에 거의 다 갔을 때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을 만났다. 걸어가면서도 부르심에 대해, 섭리에 대해, 뜻에 대해, 때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던 중이..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떠나올 때는 오히려 웃을 수 있다. 집을 것도 없이 매달려 있는 심정. 가야할 곳이 분명한데 너무 멀고 비포장 길이라,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있다.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 끝까지 사랑하며 살겠다 마음 먹고 수도원 문을 들어서며 한 약속, 세속을 등지겠다는 내 철없던 결의는 세상에 눈 감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조금씩 눈을 떴다. 난 세상을 떠나서 수도원에 간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한껏 껴안기 위해 하느님을 따라나선 것임을 깨달으며. 또 다시 시작된 죽음. 19일차. 더 늦지 않게 가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더울 때 조금이라도 유용했으면 싶어 마음을 담아 그린 부채를 드리고 왔다. 김주중 형제님 분향소엔 언젠가 내가 만든 묵주 하나 놓아 두고. 늘 미안하고 애닲은 마음이 한 번 다녀왔다고 사라질 리 없으니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마침 KTX 해고 승무원들이 기적처럼 12년 만에 복직이 된 기분 좋은 날이..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기도 하고 사제성화의 날로, 보통은 교구별로 아침에 모든 사제가 모여 미사를 하고 식사도 하고 그런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자들은 아침부터 꽃다발 챙겨 주교좌성당으로 몰려가고 미사 후엔 거나한 식사가 이어졌는데... 다른 교구는 모르겠고 대전교구만 말해보자면, 작년엔 전 사제들 함께 모여 피정을 하시두만 올해는 본당별로 알아서 하랬다고. 본당에서 꽃다발을 드리고 축하하고 식사를 하는 곳도 있었겠지만 우리 성당은 딱 본당식구끼리만(사제 수녀 직원) 모여 냉면을 사먹고 오후엔 봉성체를 나갔다. (준비한 꽃다발마저 거부하셨다는 미담이 여담으로...) 사제성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 성체를 모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 환자분들 만나러 가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게 있나 싶어 보좌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