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순리(順理)대로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순리(順理)대로

하나 뿐인 마음 2021. 6. 25. 10:08

이모에게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이 왔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한 이모를 더 이상은 고통스럽게 오래 붙들어 둘 수는 없기에 연명 치료를 중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호흡기까지 뗄 수는 없어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호흡기를 달고 있어도 밤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이모는 맥박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생의 시간을 고통 속에서 이어가는 이모를 위해 호흡기를 떼어 드리고 편히 하느님 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반겨줄 곳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올라와 있다. 입회한 후 스무 번이 넘는 연피정을 하면서 이렇게 중간에 피정을 마친 것은 처음이었다. 시작을 했으면 제대로 마치는 것이 늘 당연하고 심지어 ‘옳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열흘 간의 연피정이 삼 일만에 끝맺음을 할 수도 있고, 이모의 여든네 해의 삶이 이모 편에서가 아니라 우리 편에서 먼저 보내드리는 것으로 끝맺음을 할 수도 있다는걸 이모 덕에 배웠다. 오랫동안 이모의 선종을 위해 기도했지만 막상 이모를 우리 편에서 보내드리는 결정은 그간의 기도와 같으면서도 또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편에서 모든 걸 놓아드렸지만 정말 마지막 선택은 하느님과 이모가 하는 일. 이모는 이생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병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했던 때의 나의 기도 역시 회복이 아니라 선종(善終)이었다. 삶이 아니라 죽음을 빌어야 하는 때가 있듯 무병장수가 반드시 선(善)의 증거는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어디 무병장수 뿐이겠는가. 정상(正常)이라 생각한 것, 선(善)이라고 여겨온 것들의 범위가 얼마나 편협했었나 다시금 돌아본다. 끝맺음으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는 것 역시 어리석음이라는 것도.

이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나의 끝맺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지만 나의 끝맺음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 어쩌면 노력한 대로 - 이루어지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순간 그분 섭리를 따르며 살다보면 나의 끝도 그분 안에서 순리대로 맺어지겠지. 주님, 이모의 삶도 당신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부님께  (2) 2022.01.01
나만 모르고  (2) 2021.08.05
붙들어야 할 것과 붙들지 말아야 할 것  (0) 2021.06.20
죽음이 다가오면  (0) 2020.10.21
단편소설 같았던 하루  (9) 2020.01.2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