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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붙들어야 할 것과 붙들지 말아야 할 것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붙들어야 할 것과 붙들지 말아야 할 것

하나 뿐인 마음 2021. 6. 20. 22:04


“자기가 믿음 안에 살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 (2코린 13,5)

연피정을 시작했다. ‘자격이 없는 나를 30년 동안이나 쓰셨다’며 피정 강의를 시작한 신부님. 첫미사 때 신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경험을 나누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아직도 내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 강의를 하루에 두 번이나 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저녁에도 뭔가가 있는 피정은 난생 처음이라 엄청난 스케줄에 처음부터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 마음이 조금 녹았다. 이대로 하느님 앞에 선 나를 들여다 본다.

저녁에 잠시 걷다가 본 홀씨가 떠올랐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결국 시들고 홀씨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토록 붙들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붙들며 살고 있나. 홀씨가 되어 바람 결에 날아가 버릴 것들에 왜 이렇게 마음을 주고 서운해 하며 놓지 못하는가. 한 쪽이 바뀔 수 없다면 ‘그 한 쪽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은 끝내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시도해 봐도 좋지만 그 방법 하나만은 제쳐두어야 하는데 그걸 놓지 못한 채 여길 들어왔다.

강의가 끝나고 제법 어두워졌는데 다시 산책을 했다. 혼자서 괜히 빙빙 돌고 있는데 동생 수녀님이 나를 알아보고 빙긋 웃으며 가까이 오다가, “아, 맞다. 피정 중이지.”하고는 손을 흔들며 돌아서 갔다. 반가운 마음도 내려 놓고,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걸 내려 놓고 나의 피정을 위해 손을 흔들며 돌아서 가는 동생 수녀님을 보면서 내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을 또 생각했다.

주님, 붙들어야 할 것과 붙들지 말아야 할 것을 제게 깨우쳐 주십시오. 아니,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 손을 비우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제 텅빈 두 손으로 당신을 붙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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