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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단편소설 같았던 하루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단편소설 같았던 하루

하나 뿐인 마음 2020. 1. 20. 21:51

오늘 하루는 단편소설 같았다. 수녀원을 떠나게 된 선배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붙잡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내며 흔들리던 때나 또다른 길에 들어설 때까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며칠 전부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펼쳤다가 접었다가를 반복하며 보냈었다.

뒤숭숭 할수록 수녀원의 일상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 새벽미사를 마치고 공동기도를 바친 후 달걀 하나와 커피로 요기를 하고 수녀원을 나섰다. 해가 떴는데도 바람이 차다 싶었던 길. 기차역에 거의 다 갔을 때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을 만났다. 걸어가면서도 부르심에 대해, 섭리에 대해, 뜻에 대해, 때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던 중이었는데 수녀님은 우연히 뒤돌아 보셨다가 잠시 갸우뚱 하신 후 바로 나를 알아보셨다.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수녀님은 나를 알아보셨고 정확히 00성당이란 것도 기억해 내셨다. 당시 수녀님은 종신서원을 앞둔 젊은 유기서원자였는데, 지나가는 말이 아닌 분명하고 개인적인 초대로 내게 수녀원에 오라고 말해줬던 분이셨다. 나의 성소를 위해 처음으로 기도해 주셨던 분. 내내 고개를 젓기만 했던 나는 시간이 흘러 다른 수도회에 입회하여 20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는데, 수녀님은 내게 "참 좋다." 하시며 기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우린 이렇게 만났고 또 헤어졌다. 어쩌면 응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생각에 빠져서 기차에 올랐다.

어디서 만날까 물었을 때, 수녀님은 "부모님께 가봐야지."하면서 함께 현충원부터 가자고 했다. 현충원은 우리 부모님이 묻혀 계신 곳이다. 큰언니처럼 앞서가며 챙겨주던 선배 수녀님은 나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를 오늘, 나의 부모님도 만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우린 그렇게 한동안 가족으로 살았었고 오늘도 가족처럼 지냈지만 내일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는 게 참 아팠다. 수녀님은 또다른 길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모퉁이를 돌아서니 뒤에서 문이 닫혔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든 경우 바르게 살고자 자신을 다독이던, 주어지는 몫에 최선을 다했던, 너그러우면서도 검소하게 살았던 수녀님. 짧은 만남을 끝내고 아쉬움, 서글픔, 미안함, 고마움 모두 기도로 대신하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수녀님을 떠나보내고 왔다. 

다시 기차를 타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 못내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감추듯 단단히 코트를 여미고 걷는데, 누군가가 인사를 했다. 청년 시절 함께 성경모임을 하던 후배였다. 얼마전 성탄 미사에서 거의 2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였는데 우연히 마주친 오늘 그 길에서, 그 짧은 만남 동안 후배는 어느 수녀원에서 살다가 퇴회를 했음을, 아픈 시간을 보내고 지금은 새 삶을 시작했음을 알려줬다. 그리고 다음엔 수녀원으로 찾아오겠다며 "언니는 웃으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좋아요."하고는 돌아서 갔다. 후배는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며 문이 닫히더라고 했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내 삶이 나 혼자만의 삶도 아닌 것. 내가 세상에서 못다한 몫을 그들이 살아주고 있으니, 나 역시 이곳에서 그들이 남겨둔 몫까지 살아내야겠다.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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