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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 (20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상대의 답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아니라고 하셨대도 아닐 수 없는 일. 아닌 척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가장 먼저 속인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이고,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를 찾고 경배 드린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아울러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으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빛으로 계시됐음을 나타냅니다. 제대 앞 구유가 동방 박사들로 가득 채워져서 이천년 전의 마굿간 모습으로 완성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태 2,10-11) 공현 대축일이 되면 제의방 수녀가 잊지 말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따..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 9,37-38) 일꾼은 밭주인의 선택이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게 선택되었다. 그러니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자 푸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판단할 일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마태 10,1) 열두 제자가 하는 일은 앞부분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9,35)의 반복이다. 일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마태 15,33) 오늘은 제자들의 이 질문 앞에서 괜히 마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기적을 체험했다 해도 한 번도 빵이 많아지는 기적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결과를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본 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매번 기적을 기대할 수가 있단 말이냐. 묻지도 못하는가 말이다... 불평과 딴지가 자꾸만 올라오는 걸 보니, 지금 내가 뭔가에 단단히 걸려 있구나 싶었다. 그래, 서운했다. (난 왜 이리 자주 서운한가...) 지극히 현실적인 이 걱정을, 왜 군중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처럼 오해하는가. 예수님 앞에 우리들 믿음은 다들 고만고만한 것일 텐데, 제자들의 이 말을 단순하게 믿음이 없는 ..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는 말씀을 곰곰이 마음으로 그려보다가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시소가 떠올랐습니다. 시소는 혼자서는 타기도 어렵고 탄다고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없으면 안됩니다. 신앙생활도, 시소도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개인 기록을 측정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즐기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시소놀이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상대방의 호응이 없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올랐으면 상대를 올릴 줄도 알아야 놀이가 되는데, 상대방이 나를 올려주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매번 평등하고 균등하게 주고받는 사랑이 있겠냐마는, ..
모두가 엎드린 순간, 그 경배의 순간에도 의심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들 안에, 혹은 내 안에 나와 함께 공존합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는 의심하는 이들을 그대로 둔 채 바로 이렇게 상황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18절)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신 후 두려워하던 여인들에게 마주 오셨던 것처럼(28,9) 제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셨습니다. 의심하는 이들이 함께 있는 공동체에게도 다가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우리들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때로 믿음이 약해 의심을 하더라도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시듯 그렇게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처음 초대받았던 이들은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혼인 잔치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갔습니다. 심지어 부르러 온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람들이 무심하고 잔인할까요. 처음 초대 받은 이들은 그리 '합당한' 사람들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다시 초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임금은 고을 어귀로 종들을 보내어 아무나 만나는 대로 불러오라고 시켰고,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가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예복을 갖춰 입기는커녕 혼인 잔치에 갈 생각조차 없었던 사람들. 준비할 새도 없이 왕자의 혼인 잔치에 임금의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거리를 오가던 모습..
밭주인은 포도밭을 아주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좀 이상하게도 손수 이 모든 일들을 할 정도로 공을 들인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습니다. 소작인들을 관리할 사람도 두지 않고 떠났고, 소작인들은 자신의 몫을 가지러 온 주인의 종들을 매질하고, 죽이고, 심지어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처음부터 과감하고 잔인하며 이해불가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이들을 응징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거두지 않고 다시 더 많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단순히 소출 이익이었다면 이 일들을 처리하고 소작인들을 바꾸면 될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꾸만 믿고 종들을 보내면서 주인과 소작인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