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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 (207)
깊이에의 강요
이번 주 주일 복음은 다들 잘 아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읽을 때 주로 내가 어떤 땅인가를 묵상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번 주일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서 묵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길바닥일 때도 있고 돌밭일 때도 있고 가시덤불처럼 가시투성이일 때도 가끔 좋은 땅일 때도 있지만 씨를 뿌리시는 그분은 멈추지도 지치지도 않고 내게 씨를 뿌리십니다. 말씀이신 그분(씨)은 말릴 틈도 없이 내 마음에 떨어져 내리고, 새들에게 먹힐 줄 알면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할 줄 알면서도, 햇살에 타버려 없어질 줄 알면서도, 가시덤불에 숨이 막힐 줄 알면서도, 그 어떤 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기어이 땅에게 자신을 맡기십니다. 내가 좋은 땅일 때만 내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마태 9,17) 새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 리는 없고 젊거나 신상, 낯설거나 낡지 않은 것이 '새 포도주'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새 포도주가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쳐 맛과 향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좋은' 포도주가 되는 것인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좋은 포도주'로 건너뛰며 살아온 건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시간을 견디고 변화를 겪지 않은 새 포도주는 숙성되지 않은 포도주일 뿐. 나 역시 새 포도주일 뿐이었는데 좋은 포도주라고 착각하며 시간을 앞당기려 하거나 나를 몰라준다고 여겼었구나. 하지만 새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가 되도록 늘 새 부대의 모습으..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태 9,2) #dailyreading 지붕을 뚫어서라도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려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낫게 하셨다. 지붕을 뚫으니 빛도 쏟아져내렸다.
이번 주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각 부분마다 의지에 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25-26절은 예수님의 기도이지만 하느님의 의지(영역: gracious will)를 떠올렸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지만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 스스로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깨닫기 어렵지만 철부지νηπίοις[nēpiois, 네피오이스]는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 덕분에,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의지 때문에 오히려 잘 받아들입니다. 네피오이스는 실제로 어린 아이가 아니라 '경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의 제자들' 혹은 '순박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렵고 힘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옳고 ..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마태 8,25-26) 나는 오랫동안 예수님이 꾸짖으신 대상에 제자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마 나혼자 그렇게 읽고 이해하고 있었던 거겠지만, 오랫동안 이 지레짐작으로 혼자 서운해했고 풍랑에 시달리거나 믿음이 약해질 때 스스로를 나무란 적이 많았다. 종종 이 서운함과 자책감은 풍랑을 내게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오해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수녀원에 입회하고 수련소 시절, 성경 말씀을 하나하나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고..
이번 주 복음에는 ‘합당하지(ἄξιος) 않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악시오스는 ‘균형잡힌, ~만큼 무거운, 가치 있는, 적절한, 적합한’이란 뜻인데요, 성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아들이나 딸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쉽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행동하면 합당한, 균형잡힌, 가치 있는 것이 될까요? 합당하게 사랑하는 것은 반대로 즉,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재 자체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뒤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늘 묵상은 '하늘 나라의 열쇠'라는 말에서 걸렸다. '하늘 나라'의 열쇠. 땅을 열고 닫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열고 닫는 열쇠. 하늘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졌기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그러므로 결국 땅에서 한 것이 하늘을 여닫는 열쇠인 셈. 내가 무엇을 매고 무엇을 풀며 사는가 돌아보려는데 생각은 '내가 무엇에 묶여 있나'만 끝도 없이 쫓는다.
이번 주는 주님 승천 대축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40일이 되려면 부활 6주간 목요일에 지내야 하지만 한국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 의무축일이 아니기에 모든 이들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냅니다.) 이번 주 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이야기가 나올까요? 사실 예수님의 승천을 직접적으로 다룬 장면은 성경에 2번(루카 24,51-53; 사도 1,9-10)만 나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루카 복음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이 복음을 산에서 승천하시는 장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 주(성령강림 전 주일)는 홍보주일이기도 합니다. 올해 교황님의 홍보주일 담화의 주제는 “진심을 다해 소통에 나서고 적대적인 소통 방식을 절대 추구하지 말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