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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16,13-20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가해 연중 제21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오늘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 각자에게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신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수시로 이렇게 물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에 매번 대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5)라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마르코와 루카에서는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반응을 하십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시며 오히려 말리십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차이를 잇다른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복된 이유는, 그 말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예수님을 자신의 생각대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하느님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대로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마저도 자신이 원하는 신이기만을 바라곤 합니다. 내가 아플 땐 치유의 신이길, 내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땐 복을 주는 신이길, 내가 억울하면 용서가 아니라 공정의 신이길, 내가 잘못했을 땐 정의가 아니라 자비의 신이길...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규정하는 신이 아니라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요.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 야훼 하느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신이었지만(실제로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물어봐야 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대답하시며 그동안 바오로가 박해하던, 부정했던, 없애고 싶었던, 죽이려 했던 예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바오로는 그날 이후 지금껏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하느님과 예수님이 아닌, 진정한 하느님과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했고 진정한 회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가 믿고 싶은 하느님 말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아는 만큼 믿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는 만큼만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제대로 믿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번 주간에는, 하느님께 당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뜻대로 그려가는 하느님의 얼굴을 지우고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얼굴을 뵐 수 있기를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얼굴이고,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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