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마태 6,1) 동기의 정화. 수도삶을 시작한 동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수도삶의 궤적에 따라 정화된다. 거창한 포부였든 삶의 도피나 타인의 권유였든 수도삶을 통해 나의 이유와 하느님의 이유가 합치되어 가는 과정에서 동기의 정화가 일어난다. 어디 수도삶 뿐이겠나. 오늘 복음을 읽으며 내 삶의 방향을 생각한다.주님, 그저 산책 삼아 길을 걸을 때라도당신의 길을 걷게 하소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오늘 복음은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 되는데,시작은 이웃 사랑 이야기다. 시작만이 아니라 내내 그렇다.원수는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기도하고,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할 것이 아니고, 형제들에게만 인사해선 안 된다며동등하게 대하려 애쓰고 끼리끼리 지내지 말며 사랑을 확장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혼자 많고 좋은 것들을 겸비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내 주위의 사람들을, 더 나아가 이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린 길이다. 하느님은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은 내놓으셨고,아들은 자신을 따르든 미워하든 모든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이 되셨고,성령께서는..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책읽는수요일. 표현되는 언어.소리 없는 언어.마음 먹음.존재는 고정되지 않는다.갈라놓는 것과 이어주는 것.조금만 어긋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다른듯 통하는 의미.시간을 통과하는 의미.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20절) 보물을 가지는 것 혹은 쌓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땅에 쌓을 수 있는 것과 하늘에 쌓을 수 있는 것이 다르니 문제입니다. 재물은 이 세상에만 쌓을 수 있고, 나의 능력도 사실 이 세상에서나 쓰이는 재능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내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재능을 발휘한다면 내가 하늘에 있지 않아도 하늘 위에 나의 보물이 쌓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22절)내 눈이 맑으면 내 몸(나 자신)이 환합니다. 즉, 맑은 눈을 지니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환히 보게 됩니다. 맑은 눈으로, 치우치지 않는 눈으로, 따뜻한 눈으로,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보물도 하늘에 쌓게 되고 나 자신의 하늘 나라에 속하게 합니다. ..
함윤이 지음. 문학동네. 마음을 자꾸 붙드는 소설이었다. 나도 그렇게 나를 쓰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 들불처럼 일어서고, 썰물처럼 나를 비우고, 남김 없이 사라졌다가도 봄이 되면 싹을 틔우는 풀처럼.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어서, 혹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죽음에 다가서면서...라고 중얼거리며 자꾸만 발아래를 보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다, 막을, 막의 공장 친구들, 그리고 은단을.주인공의 어설픔.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흔들리면서도 용기를 내어보는, 아이들의 복수에 눈이 자꾸 시렸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짝사랑, 사랑, 연민, 책임감, 억울함... 어쩌면 우린 이미 알고 있지.돌아본다, 내가 지금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
마스노 슌묘 지음. 장은주 옮김. 유노책주.병원을 오가며 엘리베이터를 한없이 기다려야 할 때 읽은 내 첫번째 틈새독서. 나에겐 청소법을 알려주기 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 책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안다고 잘 하는 것도 아닌 청소. 스님 책을 읽고 나니, 수행이란 일상을 차근차근 다듬을 줄 아는 것에서 시작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전부라도 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읽는 며칠 동안 마음이 좀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만약 가족이 협조하기를 바란다면 해결책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당신 자신이 묵묵히 청소하고 항상 깨끗한 방을 유지하는 길입니다."라는 문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좀 억울하다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결국은 내가 묵묵히 청소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고는 변화가 시작되..
묵상을 하려는데 복음 속 장면과 제 소임이 자꾸만 겹쳐졌습니다. 저는 대학병원에서 원목 소임을 하는데, 가톨릭 병원이 아니다보니 간혹 달가운 존재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환자들이야 저를 찾으시고 반가워하시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사실 다양합니다. 대부분 좋게 받아들이지만 면회가 안 되는 병동을 돌아다니고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고 함께 기도하다보니 특혜를 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임종 중인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중환자실에 들어가 더 이상의 의료 행위가 필요 없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면 조금 성가신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와 비슷한 질문이나 눈짓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묵묵히 제 일을 할 뿐이지요. 다행인 것은 제가 해야 할 대답을 환자..
시장하셨던 예수님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는데 잎사귀만 있을 뿐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를 두고 그분은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하고 이르셨습니다. ‘이르셨다’(14절)로 번역된 아포크리노마이(ἀποκρίνομαι)는 ‘대답하다’, ‘답변하다’는 뜻으로 질문이나 상황에 대한 의도적이고 사려 깊은 응답을 의미합니다. 즉, 열매 맺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분명한 응답이자 가르침인 것입니다. 장면은 곧 성전으로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집으로 불리지 못하고 제물을 사고파는 이들로 가득한 ‘강도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성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장사치들이 우글거리고 기도라는 열매가 없는 성전을 두고 한탄하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