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한겨레출판. 대상이 분명해야할 명사가 모호하다, 빨강.설명하는 형용사를 아무리 거듭 읽어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빨간. 나의 세 번째 앤 카슨의 책인데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상태이지만,모든 게 매혹적이었다. 헤라클라스가 쏘아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은빨강 날개를 감추며 살아가는 연약한 소년이 되어가학적 사랑을 주는 헤라클레스를 ... 하지만 게리온은 성장했다, 조금씩.사랑을 받았지만 고통스럽게 버려진 그는보이는 찰나를 찍어 현상하여모호한 경이로움을 해석하면서내면의 자신을 찾아간다.마지막 부분은 너무 좋아서 통째로 옮겨봤다. 참, 앤 카슨의 책을 읽을 때는한 줄에서 혹은 하나의 문장에서 절대 넘겨짚지 말아야 한다.나를 기억할 수 있는 걸 주고 싶어.게리온이 문을 닫으며 속삭인다..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루카 13,8) #dailyreading심기만 하고 열매를 맺는지를 지켜보는 사람과 직접 닿아 다치지 않도록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며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사람의 차이. 심기만 해도 잘 자라는 나무가 있을 테고심어두기만 해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나무를 파는 사람이라면 잘 자라는 나무만 쓸모 있겠지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잘 자라지 못하는 나무에게 더 마음을 쓸 것이다.요즘 가끔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수녀님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주제가바로 이것이다.내버려 두지 않고 한 번 더 둘레를 파고 거름을 줄 힘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베네..
카렐 차페크 지음. 정보라 지음. 휴머니스트.카렐 차페크는 선량하고 고독한 한 사내를 우리 앞에 데려와 뒤에서 지켜보게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게 하고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듣게 한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그를 온전히 알려고 하지도, 그의 마음 속 이야기를 받아주지도 않았고 이젠 너무 늦어버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한다. 간단히, 호르두발을 두고 이해받지 못한 삶이라 말하진 못하더라도 지독하게 외로운 게 인간이구나 싶어 너무 슬펐다.호르두발은 탄광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은 더 깊고 어둡고 지독히 외로운 탄광이었으니.p.19하지만 돌아오는 길은요, 선생님.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도 안 도와줘요. 노, 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요, 힘들어요.p.63 ~ p.64"말을 그렇게 다그치지 마." 호르두발..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8) #dailyreading많이 받고 싶은 마음과 받은 만큼 내어놓으려는 마음의 무게가 달라서 삶이 고달프다. 감사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인복(人福)이 많은데 관계 비용이 적을 리 없지.어제 마침 비자 승인이 나서 대사관을 방문하러 온 동생 수녀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사는 의미에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사는 일은 아무리 하느님을 가장 중심에 모시고 산다 해도, 우리들의 인간적인 면모 덕에 기쁨과 고단함을 모두 누리기 마련. 수녀님은 수련소 시절 성격이 정 반대인 자매와 단 둘이서 필리핀 실습을 갔었는데, 아는 사람도 제대로 없..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루카 12,37) #dailyreading 그러니 주인처럼 살자.가졌으니 베풀 수 있고, 알기에 행할 수 있다.가졌지만 더 가지려 하는 게 아니고,알기에 판단부터 하는 게 아니고. 루카 17,10을 기억해 본다.그런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식탁에 앉히시는 분이 계신다. 어제 전환학교 강의 때'강은 자신을 어지럽히지 않는다'라는 최수경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맴돈다.왜 나를 어지럽히느냐 하기보다,그럴수록 더 도도滔滔히 흐르는 강물처럼.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셨지만,그 권한을 우리에게 남김없이 주심으로써가 아니라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우리의 온전한 힘이 되신다. 요즘 계속 마음이 복닥거렸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늪에 빠진 것처럼 가라앉기만 하고말씀도 붙들어봤지만 그리 큰 힘이 되지 못했다.괜스레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와 (사실 까닭이 없지도 않지만)고요히 기도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늘 아침, 비도 오고 성당에는 행사 준비로 분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루카 11,43)바리사이들은 행복이라고 생각했기에 윗자리를, 공공연하게 인사받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부정적 결과를 낳는데도 점점 집착하고 사로잡혔을 것이다, 중독처럼. 많은 경우, 꿈꾸는 행복이 실은 불행일 수 있다. 내가 꿈꾸는(꿈꾼다고 적고 보니... 정말 꿈일 뿐이가 싶어 슬프네.) 삶은 뭘까.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가 싶어서 슬프기도 하다.멀쩡한 걸, 당연한 걸 바라는 게 이렇게 외로울 일인가.나도 멀쩡하길, 당연하길 집착하다시피 바라고 이루려한다, 중독처럼.
제임스 베리 글. 안나 쿠냐 그림. 김지은 옮김. 나는별. 아피야의 매일의 경험이 하얀 원피스에 자국을 남긴다. 하루하루 만나는 새로운 것이 그대로 그려지는 신기한 원피스.꽃들과 나비, 새와 물고기, 동물들과 바위들이 고스란히 선명하게 원피스에 남겨졌다가 다음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다른 것들을 남기기 위해.그 모든 것들은 정말 사라졌던 걸까. 어느 날, 더 이상 그려졌다가 사라져버리지 않았다.원피스에 달린 나뭇잎들이 아피야를 따라왔고아피야가 선 그곳, 머무는 자리에 후드득 떨어졌다.나는 이 장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마지막 장, 아피야의 침대에서 밤마다 나무가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