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루카 5,37-38)마음이 복잡하거나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복음을 묵상하면내가 헌 옷이고 헌 가죽 부대라,내가 찢기고 터트려지는 것만 같아서묵상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실은 종종 그랬다. 오늘은 여유 있게 앞뒤 복음까지도 읽어본 후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어 낫게 하시고,중풍병자의 병을 낫게 하는 것도 모자라 죄도 용서해 주시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예수님께서그런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사람이 아프든 배가 고프든자신들이 지켜온 율법만 곧이곧대로 고집하고 타인을 단죄하던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신 말씀..
장세련 글. 신소담 그림. 단비어린이. 무더위 속 피정을 마친 마지막날 밤, 짐을 대충 싸두고 엎드려서 읽은,한쪽 다리가 짧게 태어난 고양이 이야기이다.아롱이에 대해 말하는 몇몇 어른들의 언어가 거슬렸는데,정작 아롱이는 그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목소리를 선택했다.피정 마지막 날, 아롱이 덕에나 역시 어떤 목소리를 선택해야 할지도 생각했다.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양지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40도를 넘었던 주간에 대구에 내려갔고,피정 중에 머리 식힐 겸 살짝 읽은 책 『더우면 벗으면 되지』(대리만족이었나). 귀여운 그림만큼 내용도 귀여웠다.이 이야기가 간단하게 살라고, 대충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떤 장면에선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하고 외치고 싶은 '꼰대'가 되기도 했지만... 날 어렵게 하는 게 간혹 나 자신임을 깨달을 수만 있어도 어른이야.덥다고 내 옷을 후다닥 벗어버리진 못한다 해도누군가에게 더울 땐 옷을 벗어도 좋다고 말해줄 줄 아는 어른.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죄인이어서 제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알았기에 제자가 될 수 있었다.죄든 실수든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신 예수님 말씀에“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4-5절)라고 대답한 그 순간부터이미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겠구나 생각하곤 한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셨다.예수님은 그날 그곳에서겸손하게 무릎까지 꿇은 베드로..
세미나 중에 수도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장점을 체크하는 시간이 있었다.스스로 장점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듯 여겨서 체크를 안 하고,너무나도 그렇게 살고 노력도 하지만 아직까지 장점의 경지는 아닌 것 같아 체크를 안 하고...100개 중 50개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선생님 말씀에 힘을 내보았지만 역시 쉽지는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옆 짝지와 종이를 바꾸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내적 저항이 거세었지만 ㅎㅎㅎ 부끄럽기 짝이 없는 체크리스트를 서로 바꾸어 들었는데,선생님께서 '내 눈에는 보이는데 스스로는(짝지 자신은) 보지 못하는 장점'을 체크해 주라고 하셨다.잠시 망설이다가 빨간색 펜을 꺼냈다. 내 짝지는 같이 입회를 했지만 병가를 떠나는 바람에 거의 24년 만에 가까이 앉아본 오래전 동..
애비게일 슈라이어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선생님도 아니고 교육 전문가도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소임을 하게 되었고, 수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찝찝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녀이다 보니 거의 대부분은 무례하게 하지 않으시지만 자녀들에 대한 양육자들의 태도가 자꾸 속으로 질문을 삼키게 했다. 짓궂은 정도를 넘어 아이를 괴롭히는데도 "우리 아이는 잘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던가, 아파서 첫영성체에 못 온 아이의 보충은 이날 하는 게 괜찮겠냐는 문자에 다짜고짜 "아이가 지금 어떤지도 모르면서 아픈지 물어봐주고 걱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항의성 문자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이와 그런 이야기를 이미 다 주고받은 상태였고, 아이는 6학년이고 그 어머니는 비..
매슈 버제스 지음. 카티아 친 그림. 김지은 옮김. 신나는원숭이. 사는 내내 이런 날을 잊을 수 있을까?잊을 수 없지. 이런 날을 어떻게 잊어. 온 몸과 마음의 감각이 팡팡 터지던 날.누군가가 나를 지극히 사랑해주고,나 역시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하고,우리를 팡팡 튀어오르게 하는 것들이내 눈과 귀를 온통 가득 채우던 날을.그날 밤 포근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의 충만을. 물에 홈빡 젖어도 행복하고,수박을 먹으며 옷에 흘려도 마냥 기쁘고,언니여서 좋고 동생이어서 좋다.많이 가져서도 아니고, 좋은 것이어서도 아니고, 내것이어서도 아닌,두팔 벌려 받아 안을 줄 아는 마음만큼!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