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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리아는 천사의 뒷모습을 어떤 심정으로 보았을까... 오늘은 이 마지막 문장에 자꾸 눈길이 갔다. 오늘은 내 심정이 성모님보다 천사 같았다고나 할까. 나도 천사처럼 조용히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다 지켜보지 못한다 해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군더더기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섭리를 자잘한 내 말과 내 생각을 고운 채에 걸러내고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골라내어 건낸 후, 전한 말씀이 이루어낼 그 모든 일들을 품은 채 미완성이 아니라 확신 속에서 묵묵히 돌아서서 떠날 줄 아는 삶. 그렇게 다가서고 그렇게 돌아설 것.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한 13,38) #dailyreading 베드로 자신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실제로 모른다고 한 이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실패를 겪고 약함을 받아들이며 그분께 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알았지만 내치지 않고 기다리고 품으셨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상대의 답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아니라고 하셨대도 아닐 수 없는 일. 아닌 척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가장 먼저 속인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곧 수난과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고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구원자로 환영하며 빨마 가지를 흔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라고 외치던 이들이 머지않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얼마 후 당신을 죽이겠다는 아우성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예수님, 환호하며 흔들었던 뾰족한 나뭇가지들이 결국 자신을 찌르는 가시관이 될 것을 알았을 예수님,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당신에게 닥친 모든 시간을 다 겪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성지 주일을 지내는 우리는, 같은 입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하빌리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나오는 세상이 좋다.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럭저럭 보통인 사람들, 혹은 자신의 삶에 열심인 사람들이 해결해 나가는 세상. 지고한 선이 아니라 한 발 한 발 선으로 다가가려고 애써보는 사람들의 세상. 복고풍이 아니라 실제로 1988년 작품인데, 번역은 30년도 넘게 지난 현대어여서 (그 차이가 좀 궁금하긴 했는데) 오히려 명랑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하루키 시리즈는 언젠가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아 멈췄는데 게이고 소설은 가능한 오래도록 하나하나 다 읽고 싶다.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고 하시며(이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영광’은 십자가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동안 몇 번이나 당신의 때를 언급하셨고 마침내 그 때가 왔음을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12,23)는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늘 미래형을 사용하셨는데 여기서는 완료형을 사용하셨습니다. 앞으로 올 사건이 아니라 그 시간이 이미 온 것처럼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는 사건이 분명히 이뤄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더 분명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14-15)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네, 다들 아시다시피 곧 일어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들어 올려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ὑψωθῶ(휩소토)라는 단어는 ‘고양되어지다’ 또는 ‘영광을 입다’는 의미입니다. 즉 십자가를 수치와 비참으로 보지 않고 영광의 자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십자가 안에서 영광을 발견하실 수 있나요? 고통 안에서 구원을 발견하실 수 있나요?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있을 잔치 준비로 모두 바쁘고 피곤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