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48)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때론 이 '알아줌'이 사람을 살리고 또 살린다. 세상엔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타나엘도 물었을 것이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지만 아무도 몰라준다 싶을 때, 그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숨통이 트인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을 세상에서 찾지 않는다.다만, 그 한 사람이 없을 때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답답한 일이 있어 성모상 앞에 촛불 하나 켜 놓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마당을 빙빙 돌았다. 성체 앞에 고요히 앉아 정리할 일이 있고,정리할 틈도 없이 올라오는 감정들과 곱씹게 되는 장면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선잠심보다 소리내어 묵주기도를 바치며 몸을 좀 움직이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오늘은 떨쳐내는 것이 필요한 날이었다. 좁은 마당을 뱅글뱅글 돌면서 묵주기도 10단을 바치고 나서다시 성모상 앞에 서니성모님 미소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꼭 두 손 모두 남에게 내어놓을 필요는 없다, 기대하지 않는 빈 손 하나는 상대방을 위해 뻗고나머지 한 손으로 너 자신을 다독이는 것을 잊지 말아라하시는 것 같았다. 월요일 밤이라 모든 촛불이 다 꺼졌는데새로 밝힌 촛불이 혼자서도 당당하다.
박주영 지음. 모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관심을 갖지 않던 분야의 책이다. 궁금해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잘 돌아갈 분야라 생각했고 궁금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형 이유를 찾아서 정독한 적도 있다. (다 윤석열 때문이다.) 이 책은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씨의 혹은 곽아람 기자의 에서 인용글을 보고 읽어보고 싶어진 책이다. 물론 발췌글이긴 하지만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만큼 ’바라지만 찾기 어려운‘ 이유들이라서다. 정신 없이 읽다가 남겨두고 싶은 글들을 많이 놓쳤다. 세상엔 별의별 일이 다 있고 인간이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정확한 자(scale)로 정확하게 재었어도, 늘 직선을 그어야 하는 건 아니지. "피해자다울 필요도, 피해자다움을 입증할 필요도..
정진호 지음. 현암주니어. 한 아이가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고하나둘 너도나도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수지도 위를 바라봤다. 활짝 웃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은수지를 위해 위를 바라봐준 것 뿐일까?그림책을 덮고 가만히 누워 나도 천장을 바라봤다.내가 도와주어야지 생각했는데내가 수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이 그림책이 나를 이끌어 위를 보게 했듯,어쩌면 수지가 사람들이 위를 보게 한 건지도 모르지.아니, 실제로 그렇지.내 삶이 한 번씩 오색찬란해진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나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웃었을 때였다. 함께 올려다보았을 때.그래서 함께 웃었을 때.
마이라 칼만 지음. 한정원 옮김. 윌북아트. 미술관 한 바퀴를 돌듯 사랑, 증오, 짝사랑, 연민, 후회, 슬픔, 고독, 미련, 자기위안, 자조, 담담함 등으로 버무려진 작가의 가족 이야기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며 가볍게 (그러나 조금 쓸쓸하게) 산책을 했다. 이야기에는 시간이 흘렀고 사이사이 그림에는 순간이 멈춰 있었다. 책을 덮으니 이야기가 기억나기도 하고 그림이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우리 기억들도 어떤 것은 찰나의 장면이 남고 어떤 것은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듯이 말이다. 가족 이야기라는데, 내겐 조금 쓸쓸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제목이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이구나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원제가 Still Life with Remorse였다는 걸 알았다. 후회가 자책이 남아 있는 ..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미티스블루. 일본의 여성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새 소설을 구상하며 대만에 머무는 동안, 숙소나 여행, 행사 전반을 도우며 통역을 하는 여성 통역사 샤오첸과의 사이에서 생긴 이야기이다. 현란한? 대만 음식들이 줄줄이 나오는 통에(대만 음식을 잘 모르기도 하고 맛집 여행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집중이 좀 안되긴 했지만, 식민과 피식민, 고용주와 고용인, 적출과 서출,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입장 차이 안에서 서로를 도우면서도 스스로 굳건히 서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흐르는 로맨스까지(내내 사랑이던데?). 언젠가 늦게까지 일해야 했던 날, 잠시 나와 카페에 책 읽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 어떤 남자분이 이 책..
신무연 지음. 다산초당. 문명을 이끈 5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너무 재밌게 읽었다. 시대별로 어떤 도구들이 발명, 발견되고 또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그 방향을 보여준다. 발전을 촉발한 요인과 더불어 그것이 불러온 결과까지 조목조목 재밌게 들려주는데, 침대 머리맡에서 조금씩 읽으며 잘랬다가 몇 장만 더 읽을까... 매일 밤 재밌는 고민을 했다. 도구의 역사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겠지만 이 책은 도구들이 누구에 의해 사용되고 누가 이익을 보고 권력을 가지게 되는지 그 방향도 들려준다. 재밌고 흥미진진했던 만큼,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뻗어나갔는지도 알게 되니(고개를 수도 없이 끄덕이면서 읽었다.) 인간이란 참 무상하기도 하고 인간의 선함을 매번 꺾어버린 탐욕이 세계사에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나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