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마르 11,27-33 약한 자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힘 본문

묵상을 하려는데 복음 속 장면과 제 소임이 자꾸만 겹쳐졌습니다.
저는 대학병원에서 원목 소임을 하는데,
가톨릭 병원이 아니다보니 간혹 달가운 존재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환자들이야 저를 찾으시고 반가워하시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사실 다양합니다.
대부분 좋게 받아들이지만
면회가 안 되는 병동을 돌아다니고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고 함께 기도하다보니 특혜를 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임종 중인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중환자실에 들어가 더 이상의 의료 행위가 필요 없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면
조금 성가신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와 비슷한 질문이나 눈짓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묵묵히 제 일을 할 뿐이지요.
다행인 것은 제가 해야 할 대답을 환자들이 대신 해주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환자,
기도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되찾은 환자,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족의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보호자들의 모습이
가장 훌륭한 대답이 됩니다.
복음에 나오는 권한(엑수시아ἐξουσίᾳ)은 하느님의 능력이며 이는 강제하거나 해 보이는 힘이 아닙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힘, 그래서 늘 약한 자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힘입니다.
열심히 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싶고 공들인 만큼 내 것이다 싶을 때,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못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예수님, 저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저의 약함을 통해 당신 사랑의 힘을 드러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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