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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르코의 우물/마르코 1장 (19)
깊이에의 강요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다가 나병 환자의 조용한,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낫게 해 달라고 엎드려 소리치며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넘을 수 없었던 경계를 넘어서(율법에서 나병 들린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된다고 규정했기에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하고 소리를 질러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대담하게 예수님 앞에까지 나아갔으면서도 왜 자신의 원의(저는 정말 낫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원의(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인 양 말하는가. 무릎은 꿇긴 했지만 왜 애절하게 매달리거나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나. 왜 이렇게 점잖기만 한가. 나병은 감염된 후 피부 괴사가 일어나..
이번 주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입니다. 그 회당에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은 이 더러운 영이 외친 말을 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회당 안, 어쩌면 우리 안에도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외치는 영이 분명 있습니다. ‘좋은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중요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잘못된 걸 알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필요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안타깝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맞는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믿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성당에 다니고 열심히 활동도 하긴 하는데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못해서 내 안에..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첫 번째 제자들의 부르심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를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제자들은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 형제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어떤 이들은 호수에 어망을 던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복음만으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았다거나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했다는 정보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저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던 그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셨고 그들은 곧바로 어망을 쥔 손을 빈 손으로, 그물을 손질하던 시간을 빈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다른 ..
대림 제2주일에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이’, ‘그분의 길을 곧게 내는 이’로서 마르코 복음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데요, 이번 주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세례자 요한에 대해 묵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춥고 메마른 땅 광야에 홀로 살면서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른 채 메뚜기와 들꿀만을 먹고 살 만큼 강단이 센 사람. 아니다 싶은 사람에겐 가차 없이 독화살 같은 말을 쏘아대기도 했고 예수와 버금가는 세력(당대엔 더 큰 무리의 제자를 두었다)을 오랫동안 유지할 만큼 권력형 사람. 예수 출현 이후 스스로 물러나 광야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끝까지 가장 큰 '목소리' 역할을 한 사람. 초야에 묻혀 사라지는 유..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마르 1,45) 첫마음은 왜 이리도 잘 잊힐까… 첫마음이 잘 유지되면 좋겠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무릎까지 꿇어가며 도움을 청할 땐 스승께서 하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40절), 바로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겠지. 가능성에 대고 빌었지만 나의 부주의가 다음 가능성을 막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일단 나의 원의가 이루어지고 나면 … 흩날리던 눈송이처럼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나의 다짐과 기도들은 얼마나 많았나. 선의(예수님의 치유를 ‘선의’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볍..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오늘은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 예수님을 광야로 보낸 분은 다름 아닌 성령, 즉 예수님의 광야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시련을 맞이하곤 한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오해를 받고, 이름도 소리도 없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심을 사기도 한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가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는 순간, 우리는 이미 광야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의 내보내심, 즉 하느님의 뜻이다. 사순절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예비되었던 것처럼 내게 광야가 펼쳐졌..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0절) 낫게 해 달라고 엎드려 소리치며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대담하게 경계를 넘어서 예수님 앞에까지 다가갔으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낫기를 원하니 제발 낫게 해달라 말하지 않고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니,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자신의 원의를 말하지 않고 예수의 원의를 언급하는가. 오늘따라 이 나병 환자의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한 (나에게 그렇게 보여지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왜 애절하게 매달리지 않나, 왜 간절하게 부르짖지 않나.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까지 넘어 그분 앞에 섰으면서도 왜 이렇게 점잖기만 한가. 나병은 감염된..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르 1,23-24) 회당 안 어쩌면 우리 안 내 안에도 분명 있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 외치는 영. 좋은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중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잘못된 일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필요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안타깝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맞는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믿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 없다... 성당에 다니긴 다니는데, 열심히 활동도 하긴 하는데,내것,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조금도 양보하지 못해내 안에서 들리는 '너와는 상관 없어'라는 속삭임에나도 몰래 귀 기울이지 않도록. 거룩한 곳(회당)에 있다고 해서 내 옆에 더러운 영이 없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