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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모리스 젱델 지음. 이순희 옮김. 성바오로.베네딕도회 수녀들에게 한 피정 강론을 모은 책이다. 절판된 책이라 웃돈 얹어 구했고, 구한 보람이 있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이 자기 성소에 충실할 때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비체에 필요 불가결한 선, 최고의 선을 만들어내는 우주적 기능을 완수하게 됩니다.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지만 가장 와닿은 하나만 골라보라면 이 문장이다. 내 개인의 성덕을 쌓고자 시작한 삶이 아님을 늘 되새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모리스 젱델 신부님 덕에 다시 한번 ’묵직하게‘ 의미를 새기게 되었다. 제목은 가난과 감탄이지만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이끄는 책이다. 내겐 ‘침묵’..
천선란 단편집. 문학동네.오래 전 베스트극장 시리즈를 보던 때가 생각났다. 한 시간 짜리 드라마를 매주 한 편씩 봤는데, 일주일 동안 간간히 드라마를 떠올리곤 했었다. 시리즈 드라마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지만 단막극은 어느 한 장면을 돌아보게 했다. 천선란 작가의 이 단편집도 그랬다. 각 단편마다의 어느 특정 장면이, 이야기의 힘이 자꾸 나를 붙들었다.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인데, 장면들이 건전지를 직렬 연결하듯 차곡차곡 쌓이고 이어져 자꾸 힘이 났다, 이 세상을 좀 더 잘 살아보려는 힘이.p.15"이전에는 내가 가야 할 길, 먹어야 할 이끼, 잠들 수 있는 어둠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내가 가지 않을 길, 이끼 옆에 핀 꽃. 한낮의 평화가 보인다.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다. 끊임없이, ..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루카 13,14)회당장의 이 말이 틀린 말이라서가 아니다. 맞는 말도 누군가를 옭아매고 해칠 수도 있다. 맞는 말이고 사실이니 나는 잘못 없다며 멋대로 쏟아내고 비수의 말들.요즘 툭하면, 내가 틀린 말 했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말이 아니라 태도가 틀렸어요. 예의에도 어긋나고요, 그 말을 해야할 당사자는 더더욱 아니에요. 틀렸다고. 나쁘다고. “인간은 타자를 향한 시선으로 자기의 위대성을 이루어 냅니다. 자신만을 생각할 때 자신의 가치를 잃습니다.” (모리스 젱델, ‘가난과 감탄’)
최진영. 은행나무. 성체성사로 이미 잘 달련된 나로서는 호불호를 가르는 논란의 00는 오히려 가벼웠다. 다만 젊은 청춘들의 고된 삶이, 버려진 삶이, 함부로 취급되는 삶이, 어떻게도 살 수 없도록 끝없이 내동댕이 쳐지는 그들의 삶이 너무 아팠다. ‘영영 이렇게 살게 될까봐 겁이 난다’던 담의 말이 너무 아팠어. 참, 본래 제목은 달랐다던데 지금 제목이 정확했다. 증명한 쪽은 구가 맞어. 죽으면 알 수 있을까 싶었다.살아서는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 죽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 않을까.“그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돼.”“걱정하는 마음?”“응.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나의 미래는 오래전에 개봉한 맥주였다. 향과 알코올과 탄산이 다 날아간 미적지근한 그 병에 뚜껑만..
김금희. 무제. 듣는 소설. 오디오북이 아니라 처음부터 들려주기위해 쓰인 책. 처음부터 장면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분명히 잃어버렸는데다른 것을 얻고 찾아서쓸쓸한 삶을 결국 ‘완주’하는 이야기.나는 주었기에 잃었지만네가 주었기에 채웠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사제'라는 단어에 매이면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는 말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나도 그랬다. '꼭 사제여야 하는가'에 갇히면, 사제라는 단어만 부각되어 다른 것들을 놓치기 쉽다.하지만 이 복음 어디에도 사제는, 등장하지 않는다.사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낫게 하시는 분은 사제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놓치기 쉽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그들이 '가는'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사제 앞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졌다.도착하기도 전에... 깨끗해졌다. '사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행함'이었다.병이 나은 이들은 아마도 사제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