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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감탄 본문

雜食性 人間

가난과 감탄

하나 뿐인 마음 2025. 10. 29. 19:23

모리스 젱델 지음. 이순희 옮김. 성바오로.

베네딕도회 수녀들에게 한 피정 강론을 모은 책이다. 절판된 책이라 웃돈 얹어 구했고, 구한 보람이 있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이 자기 성소에 충실할 때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비체에 필요 불가결한 선, 최고의 선을 만들어내는 우주적 기능을 완수하게 됩니다.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지만 가장 와닿은 하나만 골라보라면 이 문장이다. 내 개인의 성덕을 쌓고자 시작한 삶이 아님을 늘 되새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모리스 젱델 신부님 덕에 다시 한번  ’묵직하게‘ 의미를 새기게 되었다. 제목은 가난과 감탄이지만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이끄는 책이다. 내겐 ‘침묵’이 가장 중요한 도구로 와닿았다.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절대로 소음을 내지 않는 깊은 침묵을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침묵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듯, 사건을 하나 겪었다.

올해 남은 휴가를 마저 써야겠다 싶어서 어제부터 필요한 때 출근을 하면서 휴가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로 했다. 점심도 언니와 형부랑 먹고 휴가이긴 하지만 오후에 잠시라도 환자분들을 만나야겠다 싶어 병원에 들렀는데, 급하게 불려온 신부님과 마주쳤다.  그리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들의 장례미사를 요청하신 형제님과 함께 신부님과 나 셋이서 미사를 봉헌했다. 영정 사진도 꽃 한송이도 없는 적막한 빈소 한 켠에 조용히 미사를 차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전례문만 읽어내려가던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했고, 밤새 기도하며 썼다는 강론이 너무 아름다워서 간간이 나도 울었다. “그분께서는 그 어떤 상처나 아픔, 심지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까지도 자비로이 품어주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늘 상처받은 이를 찾아가셨습니다. 세상에서 외면당한 사람, 자신조차 사랑하기 어려웠던 이들을 그분은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자비로운 손으로 000 형제님을 품고 계십니다”… “오늘 이 미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자리가 아니라, '저의 자녀를 당신 사랑에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 안에 눈물이, 원망이, 미움이, 분노가 섞여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우리 안에서도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님, 이 영혼을 당신께 보내 드립니다. 이 형제가 살아온 시간 동안 지은 죄는 묻지 마시고 그가 살아 내야 했던 삶의 멍에만 생각해 주십시오. 주님, 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아멘.” 강론을 들으며 소박한 제대만 바라봤다. 어떤 죽음이든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제대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상처 받고 마음이 가난한, 당신의 기도가 절실한 이에게 언제나 내 기도가 가 닿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제의 이 일은 내 삶이 나만을 위해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오래도록 기억될 하루였다.

(수십 년도 넘은 책이라 현대와 조금 거리가 있다 싶은 내용(표현)도 있긴 하지만 골자를 놓치지 않으면 걸릴 건 없다.)


p.20 ~ p.21
"인간은 자신에 대해 무책임하게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미리 정해진 존재이지만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지음 받은 자기 존재에 아직은 없는 무엇인가를, 자신의 출생이 줄 수 없는 무엇인가 를 보태야 합니다. 인간은 주어진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p.29
"모든 회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회심하기 전까지 밖에서 살았는데, 하느님이 그를 내면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영혼에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그가 자신의 존엄성을 감지하게 하였습니다."

p.33 ~ p.34
"인간의 자유를 환기시킨 분도, 불가침의 것으로 만든 분도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사도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 내면에서 영원한 생명을 뿜어낼 샘을 일깨우는 시도를 하신 것입니다."

p.36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과 참다운 나를 발견하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이릅니다."

p.37
"인간은 타자를 향한 시선으로 자기의 위대성을 이루어 냅니다. 자신만을 생각할 때 자신의 가치를 잃습니다."

p.49
"우리를 변화시키는 깊은 내면의 삶은 타인을 향한 시선으로 시작됩니다. 시선이 자기 자신을 향할 때 모든 감탄이 사라지고 감탄이 불가능해집니다. 누군가 감탄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타자를 향해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존재, 즉 타자의 내면에 뿌리를 박는 것입니다."

p.64
"겸손은 자신을 축소시키고,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비굴하게 굴고,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단지 자기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감탄하는 것입니다."

p.107
"우리 자신이 모든 성전과 모든 감실과 모든 성작보다 더 고귀한 성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감실의 벽 속에 살아 계시지 않습니다. 감실은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성화시키고자, 우리를 살아 있는 성체로 변화시키고자, 우리가 실제적으로 신성의 지성소가 되게 하고자 그곳에 계시는 것입니다."

p.109
"하느님의 선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읽혀지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하느님이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빛난다 해도, 아무리 하느님이 세상에 함께 계신다 해도, 아무리 하느님이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신다 해도 인간의 역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실 수 없습니다."

p.110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그분을 드러내 보여 줄 때에만 당신을 드러내실 수 있는 하느님, 고귀하면서도 무기력한 하느님을 위한 무한한 아량이 되어야 합니다."

p.111 ~ p.112
"주님의 거룩한 인성 안에서 반사되고 있는 거룩한 가난을 기억하면서,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와 연대하고 계심을 상기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의 열매가 바로 우리 안에서 지속되는 강생임을 자각하면서 영원한 사랑의 암묵적인 계시를 우리 형제들에게 전합시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요람이 되는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합시다. 형제들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이 길뿐임을 명심하면서. 형제들이 우리 얼굴에서 온 우주가 숨 쉬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해 하느님을 만나게 합시다. 형제들이 하느님을 만난다면 그들도 삶이 변화될 만큼 열광적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p.129
"사제는 공동체를 위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공동체에 의해, 주님을 기념하는 일을 영속시키기 위해 서품되는 것입니다. 축성 권한은 그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도 아니고, 독점권도 아닙니다. 그는 성사의 상태에서만, 곧 절대적 포기의 상태에서만 거룩한 전례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p.138 ~ p.139
"우리가 존경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교황의 직분을 지지하는 것은 일치된 성사의 빛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리자 역할을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역할이 온 인류에로 확장되기를 원하며, 모든 사람이 각자의 직분 안에서 자신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며, 우리에게 동일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분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p.139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리스도가 되어 타인을 그리스도로 변화시켜야 하는 사명을 맡고 있습니다. 비록 교황과 동일한 직분에 놓여 있지는 않지만, 교황처럼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하는 책임을 떠맡고 있습니다."

p.141
"사도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투명하게 드러낼 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들을 상대할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하면서 보여 주신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p.143
"우리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교회입니다. 바로 우리가 길 가던 사람이 길모퉁이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분임을 전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것입니다."

p.152
"일종의 종교적인 물질주의야말로 물질주의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성체성사 주변에도 물질주의가 막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실제적인 현존을 소유하고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보물을 소유하듯 그분을 소유하며, 우리 집 지붕 위에 천상 피뢰침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히 잠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작은 상자 안에 계시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붙들고 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152
"우리는 파라오 사상에 젖어, 우리를 구속하지 않는 종교, 우리 삶에 결정력을 갖지 않는 종교에 안주하기를 원합니다."

p.163
"사적 영성체나 전례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성체를 영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 전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p.194
"침묵은 기도에 강한 힘을 주는 배경이 됩니다. 내 방식대로 표현한다면 침묵은 기도에 강한 내면성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열정을 지닌 수도원의 특징입니다. 수도원은 하느님을 열렬히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새로운 샘을 제공하는 요람이 되고 있습니다."

p.195
"명령에 따라 지켜진 침묵이 아닌 영혼의 깊은 숨으로 이루어진 침묵은 이처럼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정원이 없다면 세상은 무한히 초라해질 것입니다."

p.196
"수도원의 진정한 이름은 공동 성사입니다. 모든 수도원은 교회에 의해 부름을 받았으며, 교회에 의해 봉헌된, 침묵과 관상이라는 공동의 성사입니다. 이처럼 수도원은 수도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이 자기 성소에 충실할 때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비체에 필요 불가결한 선, 최고의 선을 만들어내는 우주적 기능을 완수하게 됩니다."

p.200
"수도원이 하느님의 침묵이 숨 쉬는 장소이듯이, 노동으로 피곤해지고 활동으로 소진된 영혼들이 거룩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듯이, 사제의 삶 역시 관상과 내적 침묵 안에서 꾸준히 양분을 취해야 합니다. 내적 침묵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p.204 ~ p.205
"수도자가 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입니다. 인류는 수도자를 통하여 자신을 봉헌해야 하며 찬미를 드려야 합니다. 인류의 기도는 수도자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수도자의 중재 기도는 모든 일과 날들을 끌어안아 품어야 하며, 모든 형제의 성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모든 고통과 천재지변, 난파나 비행기 추락, 질병 및 참극과 절망이 수도원에 가 닿아야 하며, 수도원은 인류가 겪는 이 모든 결핍을 해소해 주는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p.205
"수도자의 삶은 개인적 성화만 중시해서는 안 되며, 보편적 성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도자 개인의 성화는 별 의미가 없으며, 은사가 본래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사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p.207
"수도원의 침묵과 전례의 빛 안에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은총입니다. 침묵과 전례는 이 일을 위해 축성된 수도자들의 주요 의무이며, 그 일은 모든 교회의 이름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세례를 통해, 좀 더 좁은 의미로는 우리의 봉헌을 통해 그 일에 참여합니다."

p.209 ~ p.210
"침묵은 하느님의 노래를 무한히 깊은 차원에서 간직하게 하며, 타인에게 귀 기울이게 하며, 타인의 노래를 자신의 말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솔한 태도를 버리게 합니다. 타인의 영혼의 ‘음조’를 알아채지 못한 채 타인의 복음화를 꾀한다면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들의 깊은 리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악을 알아야 합니다."

p.210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의 침묵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수도 생활이 우리 안에서 고무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그일입니다. 사랑의 영적 귀 기울임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해 줍니다."

p.233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절대로 소음을 내지 않는 깊은 침묵을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침묵을 만나야 합니다."

p.233
"우리가 매일매일 침묵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잘 관리한다면 우리의 내면이 꽃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침묵하며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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