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정전 본문

함윤이 지음. 문학동네.
마음을 자꾸 붙드는 소설이었다. 나도 그렇게 나를 쓰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 들불처럼 일어서고, 썰물처럼 나를 비우고, 남김 없이 사라졌다가도 봄이 되면 싹을 틔우는 풀처럼.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가 들어서, 혹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죽음에 다가서면서...라고 중얼거리며 자꾸만 발아래를 보았다. 그러다 만난 것이다, 막을, 막의 공장 친구들, 그리고 은단을.
주인공의 어설픔.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흔들리면서도 용기를 내어보는, 아이들의 복수에 눈이 자꾸 시렸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짝사랑, 사랑, 연민, 책임감, 억울함... 어쩌면 우린 이미 알고 있지.
돌아본다, 내가 지금 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막의 손이라도 잡아야겠다. 은단의 마음이라도 잡아야겠다.
이라도...라고 쓰고 나니, 비겁했구나 싶네.
한동안, 떠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 한사코 떠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떠밀리지 않으려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생기도 힘도 여유도 바닥이 났다.
그래서 나도 멈추고 싶었다. 나를 혹은 그 무언가를.
오늘 막을 다시 떠올리며, 은단의 마음씀씀이를 떠올리며
나의 현장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을 용기를 얻고 있다.
'멈춤'이 망쳐버리는 것들을 자주 생각해야겠다.
p.72
"“근데 막아.”
“네.”
“나는 보호를 좀 받고 싶어.”"
p.74
"“요령이 있든 없든 보호는 받아야 하는 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래.”"
p.102 ~ p.103
"이번에 계약이 종료된 다른 사람들은 이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계약을 갱신했다. 수지를 포함하여 해고당한 이들이 저질렀다는 ‘근태불량’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일들로 이뤄져 있었다. 통근버스가 예고 없는 폭설이나 폭우 또는 공사에 발이 묶일 때면 모두가 함께 지각했고, 전날 잔업을 한 사람이 졸면 짐짓 모른 척 눈감아주었다. 막은 물론 오래 일한 직원도 손목이 아프거나 눈이 욱신거릴 때면 일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하지만 그게 태만하다거나, 불량한 건 아니잖아.”"
p.268
""실은 그 반대죠. 조안은 이야기했다. 다들 더 잘해보기 위해 실수하고, 실패하고, 가끔은 패배까지 하는 것이라고. 그중 누구의 손목 인대 도 늘어나지 않게 하려고, 또 어떤 사람의 손가락 마디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모여 만든 것이 이 노동조합이었다. 이번에 해고당한 이들도, 급작스레 계약이 만료된 이들도 통틀어 보호하고자 만든 영역이기도 했다."
p.278
"“그날이야.”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래, 그날이었어. 내가 너를 생각했을 때. 네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지, 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겪었는지 생각한 순간이었지. 그때 불이 꺼졌어. 내 방 전등부터 열린 문 뒤의 거실, 누나 방의 스탠드까지 모두 다 꺼졌어. 내 주위는 아주 어두워졌어.”"
p.279
"“그러다보니 이렇게 된 거야, 막아. 신기하고 즐거웠어. 그 느낌을 자주 갖고 싶었어. 그만큼 너를 자주 생각했고, 그래서 이런 마음이 생겼어. 그게 다야. 이게 내 비밀이야.”"
p.280
"“바라지 않을 거야, 막아. 아무것도······ 그게 내 자부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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