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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태오의 우물 (207)
깊이에의 강요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26,25) #dailyreading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15절) 유다는 이미 값을 재어봤고 계산을 끝냈다. 수석 사제들도 알고 자신도 안다. 그래서 딱하다. 나도 종종 딱하게 산다. 유다는 지금 진짜 아닌 것이 아니라 아닌 척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돈 서른 닢을 받았고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이 꿰뚤렸을 것이고, 속이고 싶은 욕심과 속이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회심이 아니라 거짓으로 날려 버렸다. 시늉으로는..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마태 27,23) #dailyreading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사람들이 변했다. 예수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도, 남의 말을 제대로 들어볼 생각도, 지금 하려는 내 말과 행동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생각도 없다. 그 어떤 말에도 못 박으라는 소리만 지른다. 하지만 저 군중 중에는 분명 하루하루 고달프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병을 앓고 있거나 아픈 이와 함께 살며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도, 가정에서 일터에서 종교 공동체에서 무시 당하고 억압 당하는 이들도, 단조로운 삶을 버텨가며 사는 이들도,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느낌을 떨쳐내며 사는 이들도 있었을 것..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 5,27-28) #dailyreading 반복되는 구절 ‘… 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말씀에 숨지 말 것. 합리화에 넘어가지 말 것. 하느님 앞에 가릴 것 없도록,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떳떳할 것.
이번 성탄은 대림절 시작때부터 별을 떠올렸다. 덕분에 어떻게든 그 별을 따라가 보려고 애쓴 대림시기를 보냈다. 별. 그분의 별. 공현 대축일 복음을 읽으며 다시 별을 생각한다. 동방박사처럼 별을 보고 따라나서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별이 되어야 함을 받아들이며... 나는 그분이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 빛나는 별, '그분의 별'(2절)이어야 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그분께 경배(2절)'하도록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며,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그분을 향해 '앞서가야'(9절)' 하고, 앞서가며 길을 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을 또한 받아들여야 하며, 열심히 그 길을 가는 중이었다 해도 그분이 있는 곳 위에 이르러서는(9절) 지체 없이 나의 길을 '..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마태 23,26) #dailyreading 내 선택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 봐야 한다. 말로는(생각마저도) 중요하다고, 우선 순위라고 하면서도 번번이 뒤로 밀쳐두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앞세우는 것은 무엇인지를 들여다 봐야 한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써 감추는 아픔이 있다면 과감하게 드러내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차마 말 못할 잘못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터놓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그분께로 나아가 화해하고 털어내야 한다. 이 삶을 살아서인지 내가 본디 이런 사람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남보다 '나 자신'에게 더 흔들린다. 이런 나를 남이 알까봐 두려운 것보다 내가 나를 모를까봐 더 두렵..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2절) 정당한 삯을 주겠소. (4절) 분명 주인이 첫 번째 일꾼들과 합의한 삯은 한 데나리온이고 아홉 시쯤에 온 이들과는 정당한 삯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0절) 잊은 건가. 맨 먼저 온 이들은 자신들이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한 것을 잊은 건가. 잊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더 받는’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는가. 그들은 나중에 온 이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오늘은 이들이 ‘맨 먼저’ 온 이들이었음이 눈에 들어왔다. 성경은 중간에 온 이들이나 맨 나중에 온 이들의 반응은 보여주지 않고 ‘맨 먼저’ 온 이들의 투..
땅의 입장에서는 '꼭 나만의 탓은 아니잖아'하고 싶을테고, 씨의 입장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땅에게 좀 서운할테고, 씨 뿌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좀 답답하겠다 싶고. 나는 길바닥일 때도 있고 돌밭일 때도 있고 가시덤불처럼 가시투성이일 때도 가끔 좋은 땅일 때도 있지만 씨를 뿌리시는 당신은 멈추지도 지치지도 않고 내게 씨를 뿌리신다. 말씀은 말릴 틈도 없이 내 마음에 떨어져 내리고, 새들에게 먹힐 줄 알면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할 줄 알면서도 햇살에 타버려 없어질 줄 알면서도 가시덤불에 숨이 막힐 줄 알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기어이 땅에게 자신을 맡긴다. 내가 좋은 땅일 때만 내게 오시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다. 씨 뿌리는 이도, 뿌려지는 씨도 땅을 선택하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오직 땅만이 자신의 문제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마태 9,17) #dailyreading 오늘은 ‘둘 다’에 멈춘다. 둘 다 보존되려면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둘 다 보존되려면… 새 포도주만 소중해서가 아니다. 둘 다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헌 부대라고 버려지지 않도록. 내가 헌 부대일 때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으시고, 내가 새 부대가 될 때까지 새 포도주이신 분은 기다리신다. 그러니 우리는 헌 부대일 때도 그분 손길 안에 있고 세 부대일 때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다. 헌 부대일 때도, 새 부대일 때도.